[국제질서 판이 바뀐다] 美·中 파워게임 속 지역협력체로 ‘헤쳐모여’ 가속
입력 2010-12-31 16:55
차이메리카(Chimerica)인가, 미·중(美·中)전쟁인가.
새해엔 미국과 중국, 이른바 주요 2개국(G2)의 힘에 따른 세계질서 재편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구촌 평화도 양국의 역학 관계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세계질서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는 각국의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아시아 유럽 남미 등이 지역협력체 구성에 열중하는 게 그 이유다.
◇대립과 협력의 G2=미국과 중국의 면적은 지구 표면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 세계 경제생산의 3분의 1, 경제성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 하버드대 니얼 퍼거슨 교수는 두 나라가 사실상 하나의 국가(dual country)라는 뜻에서 ‘차이메리카(China+America)’라고 불렀다. 그는 “중국의 수출품이 미국의 물가를 낮추고 중국의 저축이 미국의 이자율도 낮췄다”며 양국 협력이 위기에 빠진 세계에 해답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지난해 6월 미국 퓨리서치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46%는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가로챌 것”이라고 답했다. 그렇지 않을 거라는 응답(49%)과 비슷한 수준이다. 새해에도 미국은 중국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보인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대외전략은 ‘화평굴기(和平?起)’, 즉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않고 평화로운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으로 한껏 팽배한 중국인의 자신감, 중국 내부 모순을 민주주의가 아닌 민족주의 고취로 해결하려는 중국 정부의 태도는 새해에도 여러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 대한 경계심도 높다. 지난해 ‘중·미전쟁(Sino-America War)’이란 제목의 책을 쓴 홍콩 중문대학 량셴핑(郞咸平) 석좌교수는 “중국이 앞으로 자산 거품, 성장 둔화, 물가 폭등 등 3가지 위기에 직면할 텐데 미국은 이를 겨냥해 환율·무역·원가 전쟁으로 중국을 경제식민지화하려 한다”고 경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주필은 “미국은 (세계질서를 주도하려는) 의사는 있는데 능력이 없고, 중국은 능력이 있는데 의사가 없는 상황이 되면 세계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이런 세계질서의 전환기엔 대국 간 관계 안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합집산 속 세계질서=지난해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안정적이고도 새로운 세계질서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각자 헤쳐 모여 살길’을 찾으려는 발걸음이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아시아에선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포럼(ARF)이 각광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ARF를 자기편으로 삼으려고 각기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남북한에게도 ARF는 한자리에서 안보를 논의할 유일한 창구다.
유럽에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덩치를 키우고 있다. 과거 대결 관계였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소속 국가들이 속속 가입하고, 새해엔 러시아의 참여 방안도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미국이 지원해온 남미국가연합은 본격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새해엔 남미국가연합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중앙아시아로 무게중심을 조금씩 옮겨가며 상하이협력기구를 주요한 지역협력체로 부각시킬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동북아에선 한국 일본 호주와, 서남아시아에선 인도를 중심으로 필리핀 베트남 등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선 아프가니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의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이들 국가 역시 새해엔 카스피해 주변의 자원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지역협력체 결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