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대 세상이 바뀐다] ‘U세상’ 현실화… 영화같은 ‘생활혁명’ 급류 탔다

입력 2010-12-31 17:05


LG이노텍 김모(41) 부장은 직원들에게 ‘결재받기 힘든 상사’로 악명이 높았다. 외근과 출장이 잦아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 부장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면 직원들은 결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모바일 오피스’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 부장은 지방을 오가는 차량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급한 이메일을 확인하고 결재서류에 사인을 한다. 김 부장은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 효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그만큼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도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쓸 데 없이 버리는 시간이 줄어들어 생산성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며 반기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의 등장은 기업 근무환경을 크게 바꿔 놓았다. 사무·영업직을 중심으로 모바일 오피스 열풍이 불고 제조업에서는 작업 절차가 효율화되는가 하면 통신, 출판, 의료 등 유관산업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모바일 오피스 확산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보는 모바일 오피스 기능은 업무환경 변화를 넘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5월 스마트폰 기반 ‘T 오피스’를 구축했다. 전자결재 등 기존 유선상 시스템을 스마트폰에 단순 구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최적의 솔루션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룹 내 다른 관계사들에도 T 오피스를 구축 중인 SK텔레콤은 대리점 관리 등 업무처리 속도가 50% 이상 빨라져 그룹 전체적으로 약 1조원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LG유플러스는 이달 중 전 임직원에게 LG전자의 전략 스마트폰 ‘옵티머스 마하’를 지급하고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오피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사내 인트라넷에서 구현되는 이메일, 결재, 일정관리 등 모든 기능이 스마트폰에서 동일하게 가동되고, 각종 업무를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한국도요타는 지난해 12월 영업사원들에게 업계 최초로 고객 특성에 맞춤대응이 가능한 ‘아이렉서스(i-Lexus)’ 프로그램이 깔린 아이패드를 나눠줬다. 마케팅을 지원하는 스마트폰 용 앱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중형세단 K5를 진단·제어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폰 전용 앱을 출시한 데 이어 최근엔 갤럭시탭으로 포르테를 진단·제어하는 앱을 출시하기도 했다.

조선·철강업계도 커다란 철 구조물과 넓은 작업장 탓에 통신 제약이 많은 점을 고려해 언제 어디서나 전산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와이브로망을 구축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9월 KT와 와이브로망 구축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설계, 물류, 품질관리 등에서 신속한 업무처리가 가능해져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미 울산조선소 등에 와이브로망 구축을 마친 현대중공업은 데이터 암호화를 통한 첨단 기업보안 효과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부터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제철소 설비관리 등에 스마트 시스템을 적용했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14만 가지의 일상 설비점검을 스마트폰 등으로 현장에서 바로 처리해 생산성과 신뢰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산업현장 지각변동

스마트 기기의 등장은 관련 산업에도 큰 파장을 낳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달 서울아산병원과 개인형 모바일 의료 애플리케이션 ‘내 손안의 차트’를 선보였다. 이 앱을 내려받으면 스마트폰으로 개인의 질병 이력 및 각종 검사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투약 관리도 할 수 있어 효과적인 약 복용이 가능해진다. 환자 입장에서 언제 어디서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U) 헬스케어’ 시스템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기기가 종이책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출판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출판업계는 미국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이 오히려 출판 산업 활황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장에선 이미 스마트폰을 활용해 도서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교보문고는 스마트폰을 매장 곳곳에 설치된 QR코드(흑자 격자무늬의 모바일용 바코드)에 갖다 대면 책 정보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점 없나=스마트 기기는 일상을 보다 스마트하게 바꿔놓고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모바일오피스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안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은 PC처럼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악성코드가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업무량이 늘어날수록 분실 시 기업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직장인들에겐 되려 ‘족쇄’가 되기도 한다. 휴가나 휴일을 막론하고 시도 때도 없이 일에 얽매여 결과적으로 업무량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을 장시간 이용해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거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감, 초조함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대기업들은 상당한 비용을 들여 모바일 오피스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지만 중소업체들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업종별, 업무 특성에 맞는 최적화된 솔루션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정욱 권지혜 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