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시대 인생 3막이 바뀐다] “노인 여러분! 나이의 부담을 털고 ‘반란’을 꿈꾸세요”

입력 2010-12-31 17:12


평균 수명은 길어지고 은퇴 시기는 빨라지면서 부양만 받고 요양만 하던 노년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35.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30.1%에 달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각각 의정감시활동과 쇼핑몰 창업으로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 두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찾아 인생의 후반전에 적극 뛰어들 것을 실버세대에게 조언했다.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라.”

김승준(71) 할아버지는 미국 국방부 산하 회계처에서 근무했다. 36년 동안 일에만 매진했다. 부처장까지 지냈고 2000년 정년퇴직했다. 귀국한 김 할아버지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구상했다. 두 갈래였다. 꽃을 좋아했던 만큼 ‘야생화연구소’를 만들어 들꽃을 공부하는 것이 첫째였고, 둘째는 부인과의 세계일주였다.

하지만 봉사의 보람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다. 야생화연구소 설립과 세계일주라는 꿈은 잠시 접어두고 나눔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어보자고 결심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던 차에 2007년 강남구노인복지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회사 다닐 때는 제가 너무 바쁘니까 비서들이 전부 챙겨줬어요. 퇴직하고 보니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우선 컴퓨터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컴퓨터 교실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배우던 중 복지관에서 ‘열린의정감시단’이라는 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는데 관심이 가더라고요.”

김 할아버지는 그해 5월 감시단에 동참했다. 2009년까지 한국노인종합복지관의 예산 지원을 받아 강남구의회 의원들의 의정을 감시하는 활동이었다. 이후 김 할아버지는 본회의를 비롯한 의회 행사에 개근 출석했다. 모니터한 내용은 보고서를 만들어 복지관 벽에 게시하고 의원들에게도 이메일로 보냈다.

그는 “어느 날 한 노인이 와서 ‘내가 삼성동 사는데 우리 동네 의원은 언제 출석해서 발언하느냐’고 물어서 의회에 시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며 “처음에는 내가 지역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변화를 만들고 있더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2009년 12월 한국노인종합복지관의 예산 지원 기간이 끝나자 ‘강남열린의정참여봉사단’이라는 단체를 직접 만들어 운영 중이다. 기존 감시단에서 열심히 일했던 회원들도 함께하고 있다. 이 단체는 올해는 열린의정참여네트워크로 간판을 바꿔달고 전국으로 활동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김 할아버지는 야생화연구소와 세계일주, 의정감시 활동 외에도 두 개의 꿈이 더 있다. 그는 “노인 스스로 듣기 싫어하는 실버세대, 노인이라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고 싶다”며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수행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도 소망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세월은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존재의 이유를 느끼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말에는 운동을, 주중에는 컴퓨터를 공부하라.”

김재길(73) 할아버지는 ‘컴도사’다. ‘나는 소나무가 되고 싶다’는 뜻이 담긴 ‘오송(吾松)’이라는 단어가 붙은 쇼핑몰을 운영 중이다. 농수산물과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의 매출을 묻는 질문에는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대신 “올해 연 매출 목표는 3억원”이라고 밝혔다.

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했던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다.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전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산업기술과 관련된 직종이었다고만 소개했다. 은퇴한 시점은 1999년이라고 했다. 그는 “일을 그만두고 한 달쯤 지나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미칠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김 할아버지는 또래 노인과 달리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았던 만큼 경기도 안양시 일대 자치센터와 복지센터 등에서 노인을 상대로 컴퓨터 강의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2009년 5월 한국노인총연합회가 주관하는 ‘어르신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었다. 쇼핑몰을 오픈한 것은 지난해 2월. 고추장과 된장, 직접 키운 장뇌삼 등을 팔던 쇼핑몰은 지금은 350종이 넘는 물품을 판매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단골도 많이 늘었다. 친구들로부터는 ‘나도 쇼핑몰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를 심심찮게 듣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실버세대 또는 노년층 진입을 앞둔 이들에게 컴퓨터를 배울 것을 조언했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컴퓨터”라며 “주말에는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주중에는 컴퓨터를 배워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김수현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