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이끌고 갈 것인가, 이끌려 갈 것인가

입력 2010-12-31 14:46


사사기 16장 15∼22절

우리 민족은 지난해 적잖은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천안함 피폭과 연평도 폭격 등으로 인해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일부 기독교 인사들의 부적절한 모습을 확대 해석하고 기독교에 대해 편견을 갖게 하는 데도 일조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려는 안티 기독교 세력의 발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희망찬 새해가 시작된 오늘,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할 것인가.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끌고 가는 사람과 이끌려 가는 사람입니다. 이끌고 가는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입니다. 반면 이끌려 가는 사람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입니다.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가 중요한 이유는 인생은 그가 가진 재능과 능력보다 그의 삶의 자세와 태도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실례를 삼손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삼손은 원래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던 시대의 영웅이었습니다.

본문 말씀도 그런 그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들려 가사로 이끌려 내려가 두 눈을 뽑히고 놋줄에 매여 맷돌을 돌리면서 블레셋 사람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게 되는 모습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혹의 길, 쾌락의 길, 죄악의 길로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소가 포로로 가는 것과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잠 7:22).

과거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었습니다. 3·1 만세운동 당시 33인 중 16명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수많은 학교와 병원과 복지기관을 설립해 우리 사회를 이끌던 선구자들도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런 크리스천들을 보유한 한국 교회가 오늘날 세상에 이끌려 다니면서 사회로부터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은 삼손처럼 힘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식도, 물질도, 권력도, 젊음도 다 힘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행사했던 힘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이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이 힘으로 사자를 염소새끼 찢음같이 했고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1000명 군사를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은 이렇게 위대합니다. 문제는 삼손이 이 힘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않고 자기를 위해 쓰다가 잃어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가사의 기생과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에게 힘을 잃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 힘을 거두어 가신 줄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극은 거기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힘을 잃은 삼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의 횡포로부터 동족을 구하고 자신의 두 눈을 뺀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스가랴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슥 4:6).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아 간절히 잃어버린 힘을 달라고 부르짖었고 그 결과 살았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힘을 되찾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길자연 목사 (한기총 대표회장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