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위’ 활동 종료… 이영조 위원장 “6·25 민간인 희생 미군폭격 진실규명 못해 아쉬워”

입력 2010-12-30 18:40


“진실위가 규명한 사건들의 진실은 훗날 어떤 역사의 테스트를 받더라도 뒤집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영조(55)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은 30일 서울 필동 집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자신했다. 이 위원장은 “북한이나 미국 측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진실위가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대부분의 사건은 조사관들의 끝없는 노력과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진실이 규명됐다”고 강조했다.

2005년 12월 발족한 진실위는 권위주의 통치 시기 인권침해 사건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 등을 조사했으며, 31일 활동이 종료된다. 이 위원장은 진실위 출범 당시 상임위원으로 활동을 시작, 지난해 12월부터 위원장직을 수행해 왔다.

이 위원장은 진실위가 최근 1년간 보수적 행보로 자주 구설에 휩싸였던 점을 해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한나라당 지명 상임위원 출신이라는 점이 ‘원죄’처럼 작용해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특히 지난달 미국에서 있었던 국제 심포지엄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민중 반란(a popular revolt), 반란(rebellion)으로 표기한 논문을 발표해 비판을 샀던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5·18을 다룬 많은 논문이 ‘revolt’라는 단어를 쓰고 있으며, 4·3사건 역시 전체 맥락에서 논문을 읽어보면 문제될 게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논문 전문을 읽어보면 오히려 보수 단체에서 반감을 가질 만한 내용일 것”이라며 “내가 무슨 일을 하건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위원회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에 대해선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에 따른 민간인 희생 사건의 경우 불법성과 고의성을 밝혀야 하는데, 확인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측 자료가 있어야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 많았다”며 “자료를 확보했더라면 진실이 규명됐을 사건이 많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 새학기부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강단에 복귀하는 이 위원장은 “지난 5년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자평했다. 그는 “다시 강단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즐겁다”며 “하지만 진실위에서 있던 5년 동안 공부를 많이 한 만큼 앞으로도 과거사를 정리하거나 관련 연구 활동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