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팠더니 지하수 흐르고 이웃주민 반대하고… 구제역 파묻을 땅도 없다
입력 2010-12-30 20:47
구제역으로 살처분됐거나 살처분 대상으로 분류된 가축이 약 55만 마리에 육박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매몰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할 경우 해당 농가가 소유한 토지에 묻는 게 원칙이지만 이웃 주민이 전염병을 우려해 반발하거나 땅을 파면 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매몰지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한 구제역 의심농가의 경우 젖소 100여두를 살처분해 매립하려고 농가 내 땅을 팠지만 지하수가 나와 매립하지 못했다. 농장에서 100여m 떨어진 인근 군부대 사격장에 매립을 시도했으나 승인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한나절이 지나서야 친인척 소유의 땅에 겨우 죽은 젖소를 묻을 수 있었다.
앞으로 구제역이 더 확산되면 살처분 대상 가축 수도 그만큼 늘어 추가적인 매몰지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경북도는 토양과 지하수, 예방의학 등 각 분야 전문가 20여명으로 구제역 가축 매몰지역에 대한 사후 관리단을 구성, 매몰지역에서 나오는 침출수 등으로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는 것을 예방하기로 했다.
방역당국은 이날 새벽 전국에 내린 폭설 때문에 울고 웃었다. 영하의 날씨에 적잖은 눈까지 내려 소독액이 얼고 살수차량 이동에 지장을 주지만 눈(pH 5)이 소독액(pH 3∼4)과 비슷한 약산성으로 방역에 일정부분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생석회가 눈 녹은 물과 만나면 섭씨 200도에 가까운 열을 내기 때문에 방역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도 방역대책본부 관계자는 “보통 생석회는 지하에 있는 물과 만나 열을 내 효과를 발휘하는데 눈이 오면 지상에도 수분기가 있기 때문에 더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뇌출혈, 손가락 절단 등 구제역과의 전쟁을 치르는 공무원들의 수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8일 경기도 고양시청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직원 김모(39)씨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인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고양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 19일부터 매일 이동통제초소에서 하루 종일 방역작업을 하다가 저녁 무렵 사무실로 돌아와 그동안 미뤄둔 업무를 밤늦게까지 처리했다. 쓰러지기 전날에도 집에서 잠시 토막 잠을 잔 뒤 폭설 비상대기를 위해 이른 새벽에 출근했다가 변을 당했다. 앞선 21일에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어유지리 방역초소에서 고장난 방역기를 고치던 면사무소 직원 김모(39)씨가 손가락이 기계 벨트에 끼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하는 등 방역 현장마다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