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새해 소망은 同行

입력 2010-12-30 17:47


우리는 여의도공원에 집을 짓고 삽니다. 온종일 공원에서 먹을거리를 찾지요. 어제도 일했고, 오늘도 일하고, 내일도 일을 합니다. 대가족이 먹고 살려면 한시도 쉴 수가 없어요. 누구냐고요. 여의도공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작은 개미입니다. 우리는 공원을 찾는 이들이 적은 겨울에는 별 위험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피부로 느껴요. 생명의 위험을. 평일에는 좀 낫지만 휴일에는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기가 무서울 정도랍니다.

나들이객들은 잔디밭이면 아무 데나 돗자리를 깔고 눌러앉지요. 개미 입장에서는 점령군이나 다름없어요. 죄 없는 개미들이 무수히 죽거나 다칠 수 있고, 공들여 지은 개미집 출입구가 짓뭉개질 수 있기 때문이죠. 주택 안으로 들어가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개미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충을 억제하고, 토양을 섞어주면서 생태계에서 순기능을 담당합니다. 돗자리를 펴기 전에 개미집이 있는지 배려하면 안 될까요.

개미도 담뱃불 싫어해요

잔디밭에 가래침을 뱉는 비위생적인 짓이나 담뱃불을 버리는 위험천만한 행위도 자제하면 어떨까요. 잿빛 흰색이나 누런색의 끈끈한 가래침이 개미 위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뻘건 담뱃불이 연약한 개미를 덮쳤거나 잔디밭에 불을 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유익한 개미랑 함께 살자는 것이 우리만의 욕심은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비둘기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일부러 우리가 모여 있는 곳까지 와서 ‘우우’ 하며 날아가라고 채근하는 산보객들이 있어요. 새가 한 번 날아오르는 데 에너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아세요. 조류박사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와요. 뭐, 인스턴트식품을 먹고 뚱뚱해진 비둘기에게 운동을 시키려는 것이라고요. 에이,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는 사람들이 접근하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날개 근육이 옥죄일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람을 위해 산책로를 만든 걸 우리도 압니다. 하지만 산책로가 사람들만의 전용도로여야 할까요. 비둘기도 먹이를 찾아 잔디밭에서 산책로로 내려설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아량을 베풀 순 없나요. 모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를 피해 걷는 이들도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 비둘기까지 배려하는 이들이 우리에게는 큰 희망입니다. 영화 ‘나 홀로 집에 2’에 나오는 비둘기 키우는 아주머니 있죠. 주인공이 위험에 빠졌을 때 악당을 물리치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요. 새해엔 그런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신묘년(辛卯年)을 맞는 토끼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경사 진 잔디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을 때였죠. 갑자기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뿔싸! 뒤돌아본 순간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용왕님도 찾는다는 토끼 간이 말이죠. 도사견이 노려보고 있었던 겁니다. 주인이 개 줄을 잡고 있었지만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죠. 꽁지 빠지게 줄행랑을 쳤습니다.

미물까지 보듬는 세상을

토끼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길잖아요. 이런 체형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는 아주 유용하죠. 반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올 때는 아주 불리합니다. 그날 경사가 낮은 곳으로 도망가면서 구르다시피 했습니다. 간혹 작은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은 보았지만 큰 개를 데리고 온 이상한 사람은 없었죠. 새해에는 그런 사람이 공원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토끼를 잡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여의도공원의 개미 비둘기 토끼가 전국 산하의 생물을 대신해 새해 소망을 전합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동행하길 간절히 원해요.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