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12명의 ‘위대한 순간’ 포착… ‘물리학의 혁명적 순간들’
입력 2010-12-30 17:30
물리학의 혁명적 순간들/토마스 뷔르케/해나무
1666년 늦여름의 온화하고 쾌적한 날. 24살 영국 청년 아이작 뉴턴은 울소프 마노아라는 시골마을의 정원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었다. 무시무시한 전염병인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몇 십만 명이 숨지자 1년 전쯤 보따리를 싸고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칼리지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청년은 지금 철학적이고 수학적인 문제에 몰두하는 중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연초부터 그를 괴롭혔던 태양광선 속의 색채에 대한 문제와 중력에 관한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그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과나무에서 사과 하나가 뚝 떨어지자 뉴턴은 화들짝 놀란다. 그는 순간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긴 것이 틀림없다. 그 힘은 사과에 매달린 가지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은 곳까지 미치는 게 아닐까. 달이 지구를 돌도록 붙잡아두는 것도 이 힘이 아닐까.’
뉴턴이 중력법칙을 발견하는 순간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인류의 사고 체계를 송두리째 변혁시킨 이 발견은 그러나 결코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 아니었다. 뉴턴이 중력이라는 통일된 개념을 세우기까지에는 집념 어린 연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비서의 말에 따르면 2년 동안 뉴턴은 거의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뉴턴은 쉬는 시간을 잠시도 참을 수 없어 했다. 연구실을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점심 먹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잠은 하루에 네댓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44∼45쪽)
인류사의 흐름을 바꾼 물리학자들의 거대한 발견의 순간을 실감나게 재조명한 신간 ‘물리학의 혁명적 순간들’이 나왔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저자 토마스 뷔르케(54)가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마이클 페러데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앙리 베크렐, 어니스트 러더퍼드,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엔리코 페르미, 리제 마이트너 등 과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물리학자 12명의 ‘혁명적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들의 삶과 업적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위대한 물리학자들이 경험한 혁명적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한밤중 문득 떠오른 상념이나 번뜩이는 영감을 통해 찾아오거나, 실험을 거듭하던 중 ‘느닷없는 포탄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저자는 그러나 이들이 이룬 업적이 결코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천재라는 후대의 찬사에 부풀려져 마치 이들의 업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으며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베른 특허국 사무실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다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깊은 충격을 받고 이를 단초로 상대성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신빙성 있는 이론으로 만들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이론을 정립할 올바른 방정식을 찾고도 계산상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2년 동안이나 숫자와 씨름을 했다. 오로지 연구를 거듭하면서 그의 일상은 엉망이 됐다.
“아인슈타인은 비정상적인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갔다. 굴뚝처럼 담배 연기를 내뿜고, 말처럼 일하고, 아무렇게나 먹고, 진짜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찾아와야만 가물에 콩나듯 한 번쯤 산책을 하고, 불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했다.”(114∼115쪽)
어디 뉴턴과 아인슈타인 뿐이랴. 우라늄에서 방사선이 나오는 사실을 발견한 베크렐이나 원자에서 핵을 발견한 러더퍼드, 느린 중성자의 활동을 발견하고 핵분열 연구의 길을 연 페르미, 중성자에 의한 우라늄 핵분열을 증명한 마이트너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 중 단 한 명도 손쉽게 혁명적 순간을 맞은 이는 없었다. 모두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을 한 끝에서야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책은 물리학자들의 영화와 같은 삶을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재현하면서 읽는 재미를 북돋는다. 또 역사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자신의 연구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현실화되는 악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물리학자들의 고뇌와 시대적 아픔도 전달한다. 다만 짧은 분량 속에 복잡하고 어려운 물리학 이론에다 정치사회학적 역학관계, 유명 과학자들 간의 교류 등까지 얽혀 있어 물리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다소 어렵다고 느낄 법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열두 사람의 삶은 공통점이 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라면 심신이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열정이 있었다는 것이다”며 “열두 꼭지의 에피소드에는 선구적인 발견이나 혁명적인 이론을 얻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절절한 노력들이 깔려 있다”고 강조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말처럼 평소 꾸준히 노력하고 준비하는 자만이 꿀맛같은 혁명의 순간을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유영미 옮김.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