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누가 들여왔나… 안동 권씨 미스터리

입력 2010-12-30 18:16

민심에 침투한 바이러스 … 최초 발병지 안동 서현리 르포

소와 돼지 49만여 두가 매장된 사상 최대의 구제역 사태로 전국이 앓고 있다. 이쪽을 막으면 저쪽으로, 다시 그 다음 지역으로 재앙은 성난 회오리바람처럼 옮겨 다닌다. 모두가 구제역을 막느라 신경을 곤두세운 가운데 경북 안동경찰서는 ‘누가’ 처음 구제역 바이러스를 전파했나를 놓고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각종 의혹에 지역사회가 흔들리고 있어 진위를 밝히기 위해 수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도 아닌 지역 경찰이 구제역 원인 규명에 팔을 걷어붙인 까닭은 이번 사태의 최초 발병지인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양돈단지에 있다.

베트남 갔다 온 권씨, 대체 누구기에

지난달 29일 서현리 양돈단지에서 첫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오자 농림수산식품부는 다음날 즉각 발생 원인을 분석해 발표했다. 최근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이곳 축산업자 권모(53)씨가 구제역 바이러스 유입 경로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권씨와 함께 베트남에 다녀온 축산업자 두 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권씨가 공항에서 검역을 받지 않았다” “권씨가 방역당국의 검역 요구에 불응하기까지 했다” 등의 얘기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는 사이 안동에서 농림부의 ‘추정’은 점차 ‘확정’이 돼 갔다. 권씨 일행은 이제껏 한 번도 구제역을 겪지 않았던 청정지역 안동에 바이러스를 퍼뜨린 주범으로 지목됐다.

16만7000여명이 사는 작은 도시 안동은 소문이 빨랐다. 목축업자들 사이에선 ‘베트남 다녀온 권씨 등 3명’이 누군지 실명이 거론됐다. 게다가 권씨 일행엔 이 지역 축협 조합장과 임원도 포함돼 있었다. 지역사회에선 소위 ‘공인’이고 부농(富農)이었다. 이들이 속한 친목단체도 안동에서 사업 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곳이다.

‘권씨 등 3명’은 우연히 이름도 비슷하다. 셋 다 성(姓)이 권씨이고, 이름에도 같은 글자가 들어 있어 비슷하게 읽힌다. 안동 목축업자들에겐 구제역을 퍼뜨린 ‘때려죽일 3권’으로, 일반 주민들에겐 ‘안줏감’으로 씹혔다. “조합장이 도망갔다더라” “‘3권’이 친척지간이라더라”는 소문부터 “돼지와 함께 ‘3권’을 땅에 파묻어야 한다” “‘3권’에겐 구제역 보상비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비난과 성토가 쏟아졌다.

권씨, 양씨, 그리고 전씨의 ‘음모론’

그러다 이달 중순 반전이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오기 한 달 전쯤 서현리 양돈단지의 다른 목축업자 양모(45·여)씨가 폐사한 돼지를 집단 매장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3권’이 아닌 양씨가 구제역 주범 아니냐는 설이 제기됐고, 조금씩 힘을 얻어 갔다.

양씨 돼지를 직접 묻은 포클레인 기사가 있다더라, 한 달에 차량 60대 분량이 나오던 양씨네 돼지 분뇨가 10월부터 40대 분량으로 급감했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졌다. 급기야 양씨는 안동시청 출입기자들을 만나 구제역 숨기려고 돼지 묻은 게 아니라고 호소했다. 양씨는 “돼지가 호흡기 질환에 걸려 파묻었고, 수의사 처방까지 갖고 있다. 구제역 신고하면 보상금도 나오는데 왜 몰래 매장하겠느냐. 스트레스 때문에 요즘 잠이 안 온다”며 억울해했다.

이맘때부터 양씨와 권씨(농림부의 발병 원인 첫 발표 때 거론됐던 권씨)는 급격히 멀어졌다. 농장주가 고작 5명인 서현리 양돈단지에서 양씨와 권씨는 이제껏 큰 문제없이 지냈다. 그러나 ‘3권 원인설’에 이어 ‘양씨 원인설’이 확산되면서 양씨는 “권씨가 이상한 소문을 내고 다닌다”고 의심했고, 권씨는 자기가 소문 낸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권씨도 억울한 건 마찬가지다. 그는 서현리와 일직면 두 곳에서 농장을 운영한다. 권씨는 지난달 3∼7일 베트남 여행을 다녀 온 뒤 주로 일직면 농장에서 근무했다. 그는 “여행 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서현리 농장은 세 번밖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현재까지 일직면 농장에는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 또 입국 당일 함께 여행한 친목 회원 33명이 안동에 있는 농장 겸 한우 식당을 방문했고, 이때 농장 주인과 악수를 했는데 이곳도 지금껏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권씨 일행 중 1명이 운영하는 한우 농장에도 구제역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안동에선 전 축협조합장 전모씨가 권씨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현(現) 조합장을 음해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현 조합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구제역 책임론’으로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음모론의 당사자인 전씨는 “검역원이 (구제역 원인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이지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아니고,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냐. 가만히 있어도 이상한 소문 때문에 욕 얻어먹는 판에 말 꺼내기도 힘들다”며 조심스러워했다.

베트남에 다녀온 권씨도, 권씨와 같은 양돈단지의 양씨도, 전 축협조합장인 전씨도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누군가 자신을 음해한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믿지 못했다. 사람 몸엔 전염되지 않는다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파고들어 공동체를 갈라놓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경찰 수사

이렇게 각종 음모론이 지역 사회에 확산되자 안동경찰서가 원인 규명에 나선 것이다. 수사의 핵심은 ‘고의성’이다. 구제역을 알고도 은폐할 경우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의해 1년 이하 징역, 500만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는다.

경찰은 지난 29일 양씨와 돼지 분뇨 처리업자 김모(57)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양씨는 “10월에 죽은 돼지 300여두를 두 차례에 걸쳐 묻었다”고 진술했다. 앞서 24일에는 양씨의 돼지를 돈사(豚舍) 주변에 파묻은 포클레인 기사 전모(49)씨를 조사했다. 권혁우 안동경찰서장은 “돼지를 묻은 시점, 매몰된 숫자, 죽은 돼지인지 산 돼지인지에 대해 양씨와 포클레인 기사의 진술이 달랐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양씨 돼지가 구제역으로 폐사했을 가능성은 낮다. 권 서장은 “소에 비해 최대 3000배 전염이 빠른 돼지가 10월 말 구제역에 걸렸다면 즉시 서현리 양돈단지 일대가 전염됐어야 상식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매몰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양돈단지 일대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수의사에 따르면 양씨 돼지는 단순한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으로 폐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흉흉한 민심을 고려해 조만간 안동시청,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함께 양씨가 매몰한 돼지를 파내 폐사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매몰된 지 두 달이 지나 진실이 규명될 가능성은 낮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김병한(49) 역학조사과장은 “두 달이 지나면 사체가 부패해서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전염성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양씨가 한 달간 구제역 발병을 숨겼다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다”고 했다.

남은 한 가지 방법은 파묻힌 돼지를 꺼내 생후 연령을 따지는 것이다. 양씨의 진술대로 폐사 원인이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이라면 생후 100일 이내의 어린 돼지여야 한다. 만약 100일 이후라면 구제역으로 인한 폐사를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확실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상 누가 구제역을 퍼뜨렸는지 확인하기 힘들 것 같다. 양씨가 신고하지 않고 가축을 묻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단지 폐기물처리법 위반 혐의만 적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쇠망치까지 등장한 성난 農心

베트남 갔다 온 세 권씨 중 축협조합장 권모(55·한우농)씨가 안동에선 제일 유명하다. 2007년 경북농업명장으로 선정됐고, 소 2300여두를 키우는 기업형 농장주다(안동지역 한우 4만5000여두 중 8000여두를 그의 네 형제가 키운다). 유명세는 비난으로 조합장 권씨에게 되돌아왔다.

“물만 먹어도 사람이 죽진 않네요.” 지난 29일 안동 광석동 축협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아무 의욕이 없어 보였다. 잠을 못 잤는지 눈은 발갛고, 간혹 질문을 잘못 알아듣기도 했다.

“며칠 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한테 내 얘기를 정말 실컷 하고 싶다.’ 이제까지는 외부인 거의 안 만났어요. 낮에는 사무실에 나왔고, 밤에는 두세 시간 주먹 쥐고 낙동강가를 그냥 걸었어요. 사람이 태어날 때 주먹 쥐고 나오잖아요. 그렇게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권씨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1969년 12월 27일 한우농장을 시작해 올해가 41년째.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시겠네요.” 그는 이 얘기에 울음을 터뜨렸다. 무릎에 포개 얹은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말을, 말을 못해요. 정말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 전 축산을 떠나려 합니다. 그 큰 소가 주사 한 방에, 죽는 걸 보니까, 저 주사면, 나도 죽겠네, 그런 생각,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 딸이 저한테 매일 전화해요. 시집간 애인데, 아빠, 용기, 잃지 마세요. 하, 하루가 지나는 걸 말로 못해요. 자식, 자식 때문에 버텨요. 내가, 제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한우 키우는 울 동생한테도, 동생, 정말 내가 미안하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는 한두 마디 말하다 눈물을 뚝뚝 흘리고, 다시 한두 마디 내뱉기를 반복했다.

내 소가 모조리 매장된 것까진 괜찮은데 다른 농민들 가축이 저렇게 많이 죽은 걸 보면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입국 때 방역을 안 한 게 미친 재앙을 몰고 왔다, 안동시장이나 공무원들도 밤낮 없이 일하는데 농민들이 공무원 헐뜯고 욕하는 이 분열도 내 잘못이다, 그날 공항에서 방역만 했더라면, 후회가 밀려들지만 돌이킬 수가 없다,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 이것이 권씨의 얘기였다.

권씨 사무실엔 소를 잃고 화가 난 농민들도 수차례 찾아왔다. 최근 한 목축업자는 “조합장 자격이 없다. 당장 죽여버리겠다”며 도축용 흉기를 들고 왔다. 며칠 뒤 또 다른 목축업자는 쇠망치를 들고 “대가리를 빠아(갈아서) 안동 시내에 뿌리고 가겠다”며 난동을 부렸다. 그는 “죽여도 좋다. 할 말이 없다”고 머리를 조아렸다고 한다. 권씨는 “올해가 끝나기 전 조합장을 그만두겠다. 이제껏 위만 보고 살았는데 아래를 보며 살고 싶다”고 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내놓은 ‘추정 원인’은 이미 사람들 사이에선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조합장 권씨도 뭐라 항변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나 검역원은 5∼6개월 지나 최종 보고서를 낼 때도 원인을 확정할 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병한 역학조사과장은 “서현리 양돈단지 농장 5곳 중 4곳에 외국인 근로자가 있어서 이들이 바이러스를 옮겼을 수도 있다. 외국에서도 100건 중 1건 정도만 구제역 바이러스 유입 경로가 확정될 뿐이다”고 말했다.

검역원 기획조정과 관계자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구제역 원인을 발표한 적은 없다. 장·차관에게 1차 역학조사 결과를 보고했고, 이 내용이 언론에 질질 흘러 나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확정된 결과는 없다.” 그러나 안동에서 권씨와 양씨는 이미 ‘용의자’가 아닌 ‘범인’이었다.

안동=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