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辛卯年

입력 2010-12-29 17:53

육십갑자(六十甲子)로 불리는 60개의 간지(干支)는 중국 은(殷·기원전 17세기∼기원전 1046년) 시대의 갑골문에 나타날 정도로 연원이 아득하다. 일설에는 기원전 2697년 황제(黃帝)의 명을 받은 대요(大撓)가 천지와 오행의 기운을 연구하여 만들었다는데 믿을 말은 못 된다.



연도를 간지로 표기하는 관습이 정착된 때는 후한(後漢·25∼220년) 시대다. 후한 초부터 계산해 지금까지 33번의 신묘년이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신묘년은 391년일 것이다. ‘호태왕(好太王·광개토왕)비’에 나오는 신묘년 조(條) 때문이다. 광개토왕이 왕위에 오른 이 해 왜(倭)가 왔다는 대목과 백제와의 전쟁 대목 사이에 있는 몇 글자가 마모돼 분명치 않다. 일본 학자는 이를 왜의 한반도 진출로, 한국 학자는 백제와 왜의 동맹으로 해석한다.

신묘년 다음해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이 시작되어 396년 고구려가 한강 이북의 백제 영토를 뺏고 위례성을 공략하여 백제 아신왕의 항복을 받았다. 아신왕은 광개토왕에게 ‘영원토록 종이 되겠다(永爲奴客)’고 다짐했다. 양국 간에는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전사(前史)가 있다. 광개토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이 백제의 공격을 받고 평양성에서 전사했다. 요즘 방영되는 TV 드라마 ‘근초고왕’이 바로 이 시대 이야기다.

신묘년 조를 둘러싼 한·일 양국 학자들의 주장은 아직도 팽팽하다. 한국 학자들은 바다를 건너 백제를 쳐 부셨다는 ‘渡海破百殘(도해파백잔)’의 주체를 고구려로 본다. 광개토왕의 치적을 기리는 비이므로 고구려의 행위를 설명하는 서술로 보는 게 당연하다. 실제 역사와도 부합한다. 일본 학자들은 ‘倭以辛卯年來(왜이신묘년래)’를 근거로 왜가 한반도를 경략(經略)했다고 주장한다. 남의 싸움에 끼어든 것을 기화로 역사까지 가로채려는 고약한 심보다.

내년의 간지 신묘는 오행으로 보아 금(金)과 목(木)의 조합이다. 금이 목을 극(剋)하는 관계다. 신묘는 올해의 간지 경인(庚寅)과 짝을 이룬다. 경인이 도끼로 벌목을 하는 것, 신묘는 낫으로 풀을 베는 것에 비유된다. 대소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기운이다. 60년 전 경인년에 6·25전쟁이 터졌는데 올해 경인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작은 전쟁이 있었다. 신(辛)은 새로울 신(新)과 통하고, 묘(卯)는 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형상이다. 새해에는 남북관계에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