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원교] 조급증 보이는 중국 앞에서 우리는?
입력 2010-12-29 20:10
“올 한 해 정치 분야는 냉각됐지만 경제 교류는 활발했다고 자위해서는 곤란하다”
문화혁명의 광풍(狂風)이 중국 대륙을 휩쓸면서 치파오는 한동안 배척됐지만 그 뒤 더욱 화려하게 부활했다. 마침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치파오가 단연 화제로 떠올랐다. 속옷 라인이 드러나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중국 당국은 아시안게임을 통해 치파오 미인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을까.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노력은 탓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광저우시내 대로변 집들에 칠을 새로 해주거나 타일을 발라주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씁쓸해진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말 막을 내린 상하이 세계박람회. 박람회장 한가운데 웅장하게 세워진 중국관은 우선 높이(69m)에서 여타 국가관을 압도했다. 다른 나라 전시관보다 세 배 이상 높았으니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중국인들은 흐뭇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더욱이 황제가 쓰는 관을 형상화해 이름도 ‘동방의 관(冠)’이라고 붙였다. 이를 통해 중국의 굴기(?起)를 즐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면서도 원자바오 총리는 폐막식을 앞두고 “성공적이고 잊을 수 없는 행사”라고 자평하면서 세계 각국이 평화적 협상을 통해 국제분쟁을 해결하자고 호소했다.
장면을 바꿔보자. 1989년 7월 1일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특사를 태운 특별기가 극비리에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했다. 6월 4일 일어난 천안문 사태에 이어 미국은 물론 서방 각국이 일제히 중국 제재에 나서던 때였다. 특사로 임명된 스코크로프트 대통령 안보보좌관은 국무부 부장관인 이글버거와 한 명의 비서만 대동했을 뿐 경호원도 없었다. 특사 일행은 보안 유지를 위해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스코크로프트는 베이징에 20여 시간 머무르면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물론 리펑 총리, 첸치천 외교부장을 연이어 만났다. 이 비밀 접촉으로 미·중 사이의 ‘응어리’가 한 번에 풀리지는 않았지만 관계 개선의 단초가 마련됐음은 물론이다. 전 세계적으로 엄혹한 반 중국 바람이 불던 당시 상황에 비춰보면 부시 대통령으로선 상상을 뛰어넘는 결단이었다.(外交十記, 첸치천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해가 바뀌면 곧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에 맞춰 양국 사이에 불던 찬바람이 갑자기 부드럽게 바뀌고 있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1월 초 미국을 방문하는가 하면 중순에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한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도 들르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6자 회담을 통한 북핵 폐기’를 언급했다. 한반도 주변 기류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천안문 사태 당시 미·중 양국이 극비리에 접촉했던 것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국가간 관계란 이처럼 극적인 반전이 예비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 과정에서 기존 자세에 변화를 보여줄까.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永不稱覇)”며 조화세계론을 내세우지만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곳곳에서 과시욕과 조급증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도우미들에게 눈에 거슬릴 정도로 몸에 꽉 끼는 치파오를 입히고, 엑스포에서 다른 모든 나라 전시관을 내려다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들이다. “만만라이(천천히 하세요)”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자국 이익 앞에서는 딴판이다. 이래서야 세계의 지도적 국가로 나설 수 있을까.
그런 만큼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거론된다고 해서 지금까지 구도가 크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이미 시작된 미·중 패권경쟁이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도 없을 뿐더러 북한을 챙기고자 하는 중국의 논리가 바뀔 상황도 아니다. 그래서 올해 한·중 관계를 놓고 “정치 분야는 냉각됐지만 경제 교류는 활발했다”고 자위하는 우리 정부가 안타깝다. 불법 행위를 한 중국 선원조차 그냥 보내고서야 주권국가로서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겠는가. 새해에는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습에서 벗어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원교 편집국 부국장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