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영원한 라이벌

입력 2010-12-29 17:27


지난 10월 22일에 진한 승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시니어 기전이 시작됐다. 제1회 대주배 프로시니어 최강전은 만 50세 이상(1960년 이전 출생자) 기사들만 출전하는 기전.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14명과 시드 2명(시니어 랭킹 1위, 후원사 추천 1인)이 16강 토너먼트를 치렀다.



본선 무대에서는 오랜만에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 그리고 80년대 도전 5강으로 꼽혔던 장수영 9단, 강훈 9단, 백성호 9단, 서능욱 9단, 김수장 9단이 추억의 대결을 펼쳤다. 71세의 고재희 8단도 맹활약을 펼치며 8강까지 올라 노익장을 과시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의 벽은 높았다.

강훈 9단은 서능욱 9단을 꺾은 후 김수장 9단을 이기고 올라온 백성호 9단마저 제압하며 준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서봉수 9단에게 발목을 잡혔다. 조훈현 9단은 권갑용 9단을 꺾으며 유유히 결승에 진출했다.

이로써 영원한 라이벌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은 첫 대주배 결승전에서 조우했다. 1973년 1월 1일 백남배 본선부터 시작된 그들의 승부는 올해 2월 22일 열린 맥심커피배 본선 8강전까지 37년간 363번에 걸쳐 펼쳐졌다. 상대전적은 조훈현 9단이 244승 119패로 압도적인 우위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로는 오히려 서봉수 9단이 7승 6패로 앞서고 있다. 언제 봐도 그들의 승부는 흥분되고 설렌다. 지난 22일 결승 3번기 1국이 시작됐다. 1995년 천원전 이후 15년 만에 펼치는 결승전 번기 승부다. 이제는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만, 바둑판을 마주한 그들의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승리를 갈망하는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 진정한 라이벌이 오랜만에 만났다.

1국은 조훈현 9단의 백번이다. 이들의 시합은 항상 시간 경쟁을 하듯 초속기로 펼쳐진다. 상대보다 생각을 더하면 지는 것 마냥 뚝딱 뚝딱 속기로 일관한다. 서봉수의 두터움과 조훈현의 발 빠름이 어우러진 한판에서 승부는 비교적 쉽게 결정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중앙 접전에서 조훈현 9단이 승기를 잡으며 14집반을 남겼다. 첫판은 이렇게 1시간20분 만에 승부가 났다. 그리고 24일에 2국이 펼쳐졌다. 서봉수 9단이 막판에 몰린 상황.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승부를 조금 더 보길 원한다. 서봉수 9단의 백으로 진행된 바둑은 서봉수 9단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부담 탓인지 끝내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흑 2집반 승리로 끝이 났다.

제1회 대주배 프로시니어 최강전은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이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37년을 지겹도록 싸웠지만 그들의 승부는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돌을 놓은 그 순간까지 승부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