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 셩산명경(聖山明鏡) (최병헌 지음, 정동황화서재, 1909)
입력 2010-12-29 17:46
기독교-동양 전통 종교 비교 ‘말씀의 진리’ 제시
이 책은 꿈속에서 기독교 유교 불교 선도 등 각 종교의 대표가 성산(聖山)의 영대(靈臺)에 모여 토론한 내용을 소설 형식으로 쓴 것인데, 기독교의 진리를 동양 전통 종교와 비교하며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작가의 저술 동기와 과정이 나와 있다.
‘구세주를 믿어 항상 성경을 공부하며 평생에 일편 성심으로 원하기를, 어찌하면 성신의 능력을 얻어 유도와 선도와 불교 중 고명한 선비들에게 전도하여 믿는 무리를 많이 얻을까 생각’하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스스로 해몽해 보니 ‘성산은 곧 믿는 자의 몸이요, 영대는 곧 믿는 자의 마음이라. 유불선 삼도에서 공부하던 자라도 만일 성신이 인도하여 예수교인과 상종하면 마음이 교통하여 믿는 제자가 될 수 있음이라. 그런 고로 탁사자는 그 꿈을 기록하여 자기의 평일 소원을 표함이니라’였다.
탁사자는 저자인 탁사 최병헌을 가리킨다. 책을 좀 더 살피면, 기독교를 대표하는 신천옹이 유교의 선비 진도, 불교의 스님 원각, 선도의 도사 백운과 함께 우주창조론, 인간성품론, 구원론 등을 주제로 논쟁하는 중에 백운과 원각이 먼저 구세주의 제자가 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진도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리는 유교가 제일이라고 주장하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런데, 신천옹이 서양 여러 나라의 문명함이 기독교의 덕화 때문임을 설파하자 진도도 예수 믿기를 작정한다.
최병헌은 유학과 동양 종교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지만, 동양의 도(道)를 바탕으로 서양 기술을 취한다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비판하고, 서양 문명의 근본정신, 곧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동양의 하늘과 서양의 하늘은 하나라고 파악하며 우리 전통 종교 속에 깃든 기독교 정신을 찾아내어 종교 간의 대화를 시도하는데 물론 그 목적은 복음 전파에 두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한국 토착화를 이루고자 한 것이다.
최병헌은 1858년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 태어나 관리가 되고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시험부정과 매관매직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낙방하였다. 살 길이 막막해진 그는 1888년 선교사 존스의 한국어 선생이 되었고, 이듬해 아펜젤러의 주선으로 배재학당의 한문 교사가 되었다. 최병헌은 이 무렵부터 기독교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1893년 신자가 되기를 결심하여 세례를 받았다.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마태복음 5장 44∼48절을 접하고 크게 깨달았고, 길거리의 병든 걸인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치료하는 선교사들의 행위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런 속에서 최병헌은 기독교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랑과 구원의 종교로 확신하게 되었다.
최병헌은 세례를 받은 35세 때에 감리교의 권사가 되어 전도를 시작했고, 성서번역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신약성서의 번역에 큰 힘을 보탰으며, ‘신학월보’의 발행에도 참여하였다. 1902년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 상동교회 목사가 되고, 1903년 아펜젤러의 후임으로 정동교회를 맡게 되었다. 한학자 출신인 그가 목회를 하게 되자 청년 학생과 서민은 물론 지식인 및 양반 계층까지 대거 교회로 모여들었다. 그의 손으로 세례를 베푼 사람 수가 37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1922년 목회에서 은퇴하고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1927년 별세하였다.
그는 목회 활동과 함께 민족 계몽에 힘을 쏟는 한편, 한국 최초의 토착 신학자답게 문필 활동을 왕성하게 하였다. 대표 저작은 ‘셩산명경’ 외에 유불선은 물론 국내외에 알려진 모든 종교를 망라하여 기독교와 비교한 ‘만종일련’이 있다.
부길만 교수(동원대 광고편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