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확! 머리에 쏙∼’… 복음광고, 디자인을 입다
입력 2010-12-29 17:25
겉과 속이 같은 과일은 토마토밖에 없다(사진 1). 정직을 상징한다. 겉만 봐도 속을 알 수 있는 토마토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정직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직하면 손해 볼 때도 많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형통의 복을 받는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복음을 전하는 광고인 ‘복음광고’에 웬 안중근 의사의 손자국?(사진 2) 크리에이티브디렉터는 예수의 손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그 현장에 없었던 도마는 예수 부활을 믿지 않았다. 호언장담하길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예수는 실제 도마에게 나타나 ‘네 손가락을 내밀어 못 자국에 넣어보라’고 하셨다. 작품의 손자국에는 구멍이 있다. 언뜻 보면 지나칠 수 있는 구멍이다. 하지만 구멍은 못이 손바닥을 완전히 관통한 듯 선명하다. 작품명은 ‘부활’이다.
2004년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주최한 대한민국공익광고 공모전에서 공익광고상을 받은 작품이다(사진 3). 제목은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이다. 죽은 사람에게 주머니는 필요 없다. 죽은 사람이 저 세상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도 명예도 재산도, 죽으면 다 소용 없는 것이다. ‘이웃이 우리의 주머니입니다’라고 부연한다.
광고회사 제이애드의 정기섭(48) 대표 작품들이다. 복음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광고 형태로 만들었다. 1994년 창업한 제이애드는 LG CNS, 대교, 나우리해운항공 등의 인쇄 광고를 맡았었다.
정씨도 수익을 우선으로 꼽는 일반 회사의 대표였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복음을 전하는 광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2001년 사업에 실패하고 죽기를 각오하면서 새로운 눈이 열렸다. 그는 프랑스 칸광고제에 출품하러 갔다가 현지에서 복음광고를 만났다.
“칸광고제에 입상하고 죽으면 사람들이 기억하겠지 싶었어요. 그런데 탈락했어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죽자던 계획을 포기하고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 입선했나 보려고 전시장을 찾았어요. 그곳에서 한 광고를 보게 됐죠. 그것이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광고는 단 두 마디뿐이었다. “신은 죽었다.”(니체) “니체는 죽었다.”(하나님) 신이 죽었다고 말한 니체는 죽었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메시지였다. 이 광고는 그동안 들어온 수천 번의 설교보다 더 분명하게 복음을 전했다. 정씨는 무늬만 기독교인이던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
그는 또 7세 자녀를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존재를 절감했다. 아이의 윗니가 아래가 아닌 위 방향으로 나고 있었다. 여기에 덧니까지 겹쳐 두 개의 이를 뽑아야 했다. 신경이 조밀해 수술이 4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하지만 성과 없이 봉합했다. 1주일 뒤 아이의 잇몸이 심하게 부어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는 “위 방향으로 나던 이가 방향을 틀어 아래로 향하고 있다”며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을 경험하고 기도하며 만든 첫 작품이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이다. “2004년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한 달간 새벽기도를 했어요. 그때 이 광고 콘셉트가 생각났어요.”
수상을 하고 다시 3년간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다. 이후 만든 광고가 ‘100-1=0’ ‘0+1=100’이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비밀을 아는 예언의 능력이 있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의미다. 또 ‘좌절하고 실패해도 예수를 만나면 100% 성공한 인생이다’ ‘내가 죽어 없어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살면 구원을 얻는다’는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정 대표는 이 광고를 전도지로 만들어 칸, 니스, 모나코, 로마, 아테네 등에 전도여행을 다녀왔다. ‘100-1=0’ ‘0+1=100’을 보여주고 궁금해 하는 순간 복음을 전하는 식이었다.
이번 복음광고들은 그 후 두 달간 새벽기도를 드리며 떠오른 아이디어의 결과다. 70여편이 떠올랐다. 문제는 제작비였다. 하지만 그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광고주’라고 생각하며 재정이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복음광고 캘린더를 원하는 거래처 사장을 만났다. 이렇게 해서 2011년 캘린더에 작품을 실었다. 총 2000부가량 인쇄했다.
작품 12개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못 자국이 있는 손바닥이다.
“부활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많이 고민했던 작품이에요. 부활하신 예수의 손, 못 자국 등 하나하나 생각해 내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더 감사할 수 있었어요.”
정씨는 적절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손바닥에 먹물을 발라 화선지에 수백번 인쇄했다. 이 손은 티셔츠에도 프린트했다. 입고 다니다가 무슨 뜻이냐고 질문 받으면 복음을 전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안중근 의사의 손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외국인은 금방 예수의 손이라고 생각해요. 역사와 문화의 차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안중근 의사는 비기독인도 잘 아니까 오히려 더 부각되는 것 같아요.”
그는 부활절 연합예배 때 모든 회중이 이 티셔츠를 입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의미가 회자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못 자국이 있는 발도 작품으로 만드는 중이다. 이렇다할 이미지를 얻지 못해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헷갈리게 해 오히려 더 어필하는 작품은 ‘죽복’이다(사진 4). “오직 예수 십자가로 살 때 축복(祝福)보다 더 좋은 것이 죽복(死福)입니다. 내 자아가 죽고 세상적인 가치관이 죽고 명예와 직분이 죽고 주님과 함께 사명을 감당하며 가는 그 길은 행복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인쇄 과정에서 기술자가 큰 일이 났다고 연락했어요. ‘축복’이 ‘죽복’으로 잘못 인쇄됐다고 안절부절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잘 읽어보라’고 했죠. 축복이 맞을 텐데 왜 죽복이라고 했을까, 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사진은 일산 호수공원에서 찍었다. 새벽에 산책하다 영감을 얻었다.
작품에는 사람 모델이 여러 번 나온다. 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 마주잡은 손, 사랑을 표시하는 손 등. 못 자국이 있는 자신의 손을 제외한 모델 모두가 그의 가족이다. 정씨는 고1, 중1 형제를 두고 있다.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의 맞잡은 손 중 남성 손이 큰아들, 여성 손이 아내의 것이다(사진 5). 물에 빠진 것을 상상하며 손 내민 이가 하나님이심을 표현했다.
야구 마니아에게 전도 효과가 있겠다. ‘컴백 홈’의 이미지는 야구 홈베이스다(사진 6). 이미지 편집프로그램으로 베이스 위에 십자가를 첨부했다. 홈과 교회 이미지가 함께 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뜻이다.
작품을 캘린더에 넣다보니 교회 캘린더에 관심이 많아졌다. 쓴소리도 했다. 한동안 성화만 나오더니 이제는 대형 교회건물 일색이라는 것이다. “자랑할 것이 건물밖에 없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그 건물은 그저 장소일 뿐 ‘교회’가 아닌데 말이죠.”
그는 복음광고의 효과를 누차 강조했다. “광고는 천 마디의 설교보다 한번의 비주얼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요. 복음광고를 통해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지 명확해진 것 같아요.”
가까운 시일 내에 복음광고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후배 장례식에 놓인 조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자신의 장례식 때는 조화 대신 복음광고 작품을 세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 장례식은 당장 어려울 것 같으니까(하하), 먼저 전시회를 열까 합니다. 광고 작품 하나하나에 촌철살인의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어요.”
글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