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화단 가보세요” 전주 ‘얼굴없는 천사’ 또 왔다
입력 2010-12-28 20:57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올해까지 11년째 이어졌다.
28일 오전 11시55분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의 전화벨이 울렸다.
40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남성은 “저희가 매년 성의 표시하는 것이 있는데, 동사무소 인근의 미용실 옆 골목 화단에 (성금을) 뒀으니 가보세요”라고 말한 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바로 ‘그분의 목소리’였다.
직원들이 골목으로 달려가 보니 예년처럼 A4용지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5만원권 지폐 일곱 묶음(3500만원)과 동전이 담긴 돼지저금통(84만900원)이 들어 있었다.
주민센터는 성금 전달 시점과 방식, 목소리 등을 살펴볼 때 ‘얼굴 없는 천사’가 잊지 않고 찾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천사’는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탄절을 전후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주민센터 인근에 놓고 갔다. 특히 지난해에는 과거 9년간의 성금액인 8100여만원과 맞먹는 8026만원을 한꺼번에 내놓고 편지까지 남겼다. 편지에는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였으면 합니다. (추신)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천사가 이날까지 몰래 놓고 간 성금은 모두 12차례 1억9720만4020원이다. 2002년에는 5월 4일과 12월 24일 두 차례 놓고 갔다. 매년 어려운 이웃을 격려하는 ‘쪽지’를 함께 남겼지만 올해는 이를 생략했다.
한편 전주시는 지난 1월 주민센터 화단에 ‘천사’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