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크리스마스 선물
입력 2010-12-28 17:53
크리스마스 저녁인데도 지하철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사실 크리스마스 기분도 그리 나지 않았다. 서른쯤 되었을 젊은이가 뭔가를 잔뜩 싣고 탔다. 그 속에는 옥수수가 가득 들어있었다. 유난히 추운 날 옥수수는 왠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사람들 앞을 지나가며 옥수수를 사라고 권했다. 찐 지 얼마 되지 않은 옥수수이니 한 봉지씩 사달라며 손님들 앞에서 떼쓰듯 멈춰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옥수수를 사지 않았다. 그 추운 날의 차가운 옥수수는 아무래도 당기는 메뉴가 아니었다. 차라리 장갑을 팔면 하나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크리스마스이브래도 옥수수는 당기지 않았다. 그는 “정말 너무들 하시네” 하면서 화를 내며 다른 칸으로 건너갔다.
물론 무언가를 파는 일과 구걸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강매는 곤란하다. 그것도 파는 사람이 사족이 멀쩡한 젊은이일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구걸이 가장 유리한 사람은 할머니다. 할머니들이 지하철 통로에 앉아 떡이나 채소류를 파는 것보다는 구걸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존심 있는 노인들은 절대 구걸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떡 한 팩이나 나물 한 봉지를 팔아 손자 손녀를 학교에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건은 사지 않고 돈 천원 내밀면 화를 내는 할머니도 있다. 왜 우리는 가난해 보이는 할머니는 동정하면서 할아버지에게는 무심할까? 아니 나만 그럴까?
입장을 바꿔서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절실한 입장에 놓인 자기 자신을 상상해보자. 아픈 아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한 퇴직자나, 사업에 망해서 빚더미 위에 앉아 거리로 나온 실패한 사업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향해 물건을 사라고 설득한다. 딴에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용감하게 말을 시작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다. 이런 상황은 매순간 일어나는 흔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날은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하필 옥수수를 파는 청년의 뒷모습이 사뭇 안쓰러웠다.
사실 지하철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은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경우가 많다. 지하철 계단 윗목에 터를 잡고 매일 출근을 하는 할머니도 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도 어김없이 털모자를 쓰고 차가운 지하철 계단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천원짜리 한 장을 바구니 속에 넣는다. 아니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한 장 더 넣는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애기엄마 복받으슈.” 할머니에게도 행복한 젊은 날이 있었을까? 속으로 나는 생각한다.
지하철에서 거리로 올라오는 순간, 나는 지하철 선반에 미국에서 다니러 온 친구에게 주려했던 호박엿 한 상자를 두고 내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도로 계단을 내려가 내 엿 상자가 어느 역 선반엔가 그냥 놓여있는지 지하철역 사무실에 확인해 보았지만 없었다.
포장이 너무 근사해서 그 상자를 가지고 내린 사람은 열어보는 순간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셈 치자고 생각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하니 조금쯤 덜 억울했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