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박병광] 2010년 韓·中관계 돌아보니
입력 2010-12-28 17:53
2010년이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동아시아 안보와 중국문제를 탐구하는 전문가로서 올해는 예기치 못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북한의 잇단 도발로 인해 대한민국은 비통과 분노로 점철된 가운데 엄중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정작 북한에 대한 규탄과 대응은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비협조로 인해 번번이 쓴맛을 보았다. 세밑의 한 자락에서 자연스레 한·중관계를 돌아보고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 1. 3월 26일 밤 대한민국 해군의 천안함이 서해상에서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 중국이 요구하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결과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났으나 중국은 사건의 원인과 책임소재에 대해서 함구했을 뿐 아니라 속으로는 북한을 두둔하면서 국제사회의 북한 규탄을 반대했다.
# 2. 천안함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이던 5월 3일 김정일은 압록강을 건너 베이징을 방문했고 불과 3개월 뒤인 8월 26일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 최고지도부는 동북지방으로 달려가 김정일을 환대했고 김정은 세습후계체제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표시하면서 “북·중 우의가 대대로 이어지길 축원한다”고 했다.
대립관계 첨예하게 드러나
# 3. ‘내정불간섭’ 원칙을 강조하던 중국이 10월 15일 한국정부에 반체제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정부대표단을 보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유럽 국가들이 시상식 참석 등 류샤오보에 대한 지지를 계속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암시가 전해지지 않았을까.
# 4.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확실시되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10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국전쟁 참전 6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으며, 세계 평화와 인류 진보를 지켜낸 위대한 승리”라고 주장했다. 중국외교부는 이것이 중국정부의 정론(定論)을 대변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 5.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대한 포격을 단행해 대한민국 영토를 공격하고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행위를 저질렀다. 중국은 남북한 양측의 냉정과 절제를 요구하면서 생뚱맞은 6자회담 재개를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유엔에서의 북한 규탄 역시 중국이 “특정 국가를 지칭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요컨대 금년은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 양국 간 대립이 첨예하게 표면화된 한 해였다. 무엇보다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한·중관계는 ‘북·중 전통우호관계’와 ‘한·미동맹 관계 속의 한·중관계’라는 구조적 한계와 갈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북한문제로 인한 한·중관계의 갈등은 단지 양국관계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미·중관계도 급속히 냉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 결과 최근의 동북아정세는 냉전시대의 ‘북방3각(북·중·러)관계’와 ‘남방3각(한·미·일)관계’가 대립하는 구도를 연상시킨다.
해법 없어도 협력 불가피
복잡해진 한·중관계를 푸는 당장의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갈등은 언제 겪어도 겪어야만 하는 진통이랄 수 있다. 이러한 진통을 겪지 않고 그 구조적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안정과 동북아의 평화는 언제든 요동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한·중관계는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미·중관계 및 중·일관계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즉, 서로 ‘전략적 경쟁자’이거나 ‘적대적 세력’으로 간주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양국은 상호 ‘전략적 협력관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11년에는 한·중 양국이 상호 신뢰와 공감대의 바탕 위에서 한반도 안정과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硏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