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성기철] 이 대통령·손 대표 대화할 때
입력 2010-12-27 18:56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라디오 연설에서 작금의 안보 위기 상황과 관련, 국민 단합을 호소했다. “강력한 군사적 대응에 앞서 국민적 단합이 필요합니다. 우리 국민이 하나가 되어 단합된 힘을 보일 경우 북한은 감히 도전할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흩어지고 마음이 갈릴 때 북한은 우리를 노릴 것입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북한으로부터 천안함 폭침을 당하고도 상당수 국민이 정부 조사 결과를 믿지 않았을 때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로 인한 국력 낭비가 얼마나 컸던가.
지난달 연평도 공격을 받고는 북한의 만행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민간인 거주지역에 폭탄을 퍼부은 북한을 용서할 수 없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추가 도발을 해 올 경우 강력히 응징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대통령이 야전에 밝은 강성의 김관진씨를 국방장관에 기용한 것을 국민들이 환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여야 대북정책 시각차 커
문제는 야당이 정부의 행보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연평도 포격 직후 대정부 항의 농성을 풀고 북한을 비난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 안보에 관한 한 여야가 같은 길을 걷는가 싶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자 서슴없이 전국순회 장외투쟁에 나섰다. 장외투쟁은 28일 서울 집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지만 민주당은 새로운 형태의 대여투쟁으로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 사이 대북정책에 관한 여권과 민주당 간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나고 말았다. 정부 여당은 추가 도발을 무릅쓰고라도 대북 강경 노선을 견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에 반해 민주당은 대북 햇볕정책의 유용성을 강조하며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이 정반대다. 이 대통령이 염려하는 국론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여권과 민주당 사이에 대화의 문이 꽉 막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대북정책 수정과 함께 예산안 무효화 및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4대강 사업 반대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여권이 수용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들이다. 그렇긴 하지만 명색이 제1야당의 요구와 주장에 여권이 이토록 철저하게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특히 청와대는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권이 오만하다는 소릴 듣기 십상이다. 어쨌거나 정치는 완전 실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의 경우 안상수 대표가 잇따른 실언으로 발언권이 땅에 떨어진 상태여서 야당과의 대화 물꼬를 트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결국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 아니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이 대통령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회동을 갖고 정치를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바라는 국민 단합을 위해서다. 회동 성과에 큰 기대를 걸지는 말자.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 자체가 국민들에게는 안심이 되고 희망의 씨앗으로 인식될 것이다. 안보 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남 자체가 국민에 희망
손 대표 입장에서도 대통령과의 회동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한나라당 출신인 손 대표는 이번 장외투쟁으로 전통적 야당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야성(野性)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이제 출구전략을 모색할 때다. 여권이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계속해봤자 헛수고에 그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을 만나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유감 표명 정도라도 받아내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감 있는 대선 예비주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이다. 지금 나라 사정은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아세우며 거리에서 ‘마이크 정치’를 할만큼 한가롭지 않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