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을 조건부 敵으로 규정한 국방백서

입력 2010-12-27 20:56

국방부가 30일 발간되는 올해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하지 않는 대신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천안함과 연평도 공격 등으로 우리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주적’을 국방백서에 넣을지를 재판단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절충됐다. 2004년 이후 국방백서의 ‘직접적 군사위협’, ‘현존하는 군사적 위협’보다는 강화된 표현이지만 당초 주적 개념을 부활시키겠다던 기개에 비하면 미흡하다. ‘위협이 지속되는 한’이라는 단서를 단 것도 구차해 보인다. 매년 북한의 도발 상황을 봐서 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겠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내년에 남북정상회담 소리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적’ 표현도 삭제하겠다는 건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27일 “군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눈치를 보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앞으로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정부 차원의 공식 자료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부담이 있는 것 같다”는 말로 군만의 판단이 아님을 시사했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주적’ 표현은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다. 단호한 응징과 몇 배의 보복을 다짐하던 기개는 어디로 가고 그 사이 북한 눈치를 보게 됐는지. 주적으로 부르지 않고 적으로 부른다고 해서 고마워할 북한이 아니다.

‘주적’ 표현과 남북 관계는 별개다. 북도 문제 삼지 않던 ‘주적’을 2004년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 알아서 삭제했다. 결국 우리 내부에서 ‘주적’을 문제 삼는 게 문제다. 북한의 대남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지금 남한에서 주적론 책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가소롭다는 투로 비난했다. 북한은 우리를 분명 적으로 보고 있다. 최근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북한이 내년에 서해5도를 직접 침공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또 ‘주적’ 여부를 재판단하겠다고 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