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 자녀의 권세
입력 2010-12-27 17:55
요한복음 1장 12∼16절
우리는 보통 ‘잘 사는 사람’과 ‘부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잘 사는 사람’과 ‘부자’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부자는 말 그대로 돈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잘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는 잘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목적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재벌의 자녀들과 권력자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이 아무리 크다 한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특권과 권세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놀라운 권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하나님의 것이 우리 것이 되는 권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과 역경이 없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함께하심으로, 시련과 역경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이 사실을 깊이 경험했던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담대하게 고백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것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은혜로 우리가 받은 권세는 차고 충만한 것으로 모든 부끄러움을 덮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과 수치, 상처를 덮고도 남을 만큼 충만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과거 우리의 모습에 기초해 우리를 정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에 자신을 맡긴 이들은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위하여 죽었노라’라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 가운데 살아갑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바울이 과거에 갇혀 살았다면 그는 평생 살인자의 낙인을 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의 과거와 수치를 덮고도 남았습니다. 그의 남은 평생을 예수님의 사도로 살았습니다.
셋째, 이 모든 권세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절)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권세는 오직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약속을 믿는 이들의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을, 우리 앞에 놓은 벽을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 3장에는 자신의 인생을 믿음으로 결론내린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등장합니다. 비록 시기와 고자질로 위기에 빠졌지만, 이들이 믿음으로 결론을 내렸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누렸습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교황청과 맞섬으로 일평생 박해와 죽음의 위협 가운데 있었습니다. 두려움으로 잠을 못 이룬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서, 저 작은 새 한 마리도 먹이시는 신실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모든 난관을 이기고 교회와 시대를 개혁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는 신실한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빈 두 손을 들고 나아갈 때, 세상을 이기는 권세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최성은 목사(서울 남서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