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 감정적 접근보다 냉철한 시선으로
입력 2010-12-27 20:48
역사에 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설’이라는 것도 대개는 알고 있을 듯하다. 우리는 그것이 당연히 허위라고 생각한다. 임나일본부설이 기록된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는 허위로 가득찬 일본 내부의 기록일 뿐이며, 고대 문물은 한반도 사람들이 일본에 전해주었는데 임나일본부 따위가 한반도에 있을 리 없다는 등의 근거를 든다.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에서 한국 역사가들의 감정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일본서기의 한반도 남부 경영론은 허구라고 치부하면서도 백제의 왕인이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주었다는 등 삼국이 선진문물을 전수했다는 기록은 믿는다는 것이다. 일본서기 뿐 아니라 중국의 송서(宋書)에는 왜의 5왕 가운데 하나가 ‘사지절도독·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7국 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을 자칭하는 등 왜가 한반도 남부에 대한 군사권을 주장한 것으로 나와 있다.
저자는 임나일본부, 즉 한반도 남부경영론이 1900년대 정한론(征韓論)의 대두와 함께 집중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음을 근거로 들며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에게 임나일본부론이 한국 침략의 이론적 명분이 돼 주었다고 말한다. 남선(南鮮) 경영의 근거인 일본서기 신공황후 관련 기록(신공황후가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정벌했으며, 백제와 고구려로부터도 항복을 받아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군사작전의 주체가 왜가 아닌 백제였다는 의문을 제시한다. 신라를 치러 와 가야 7국을 평정했다는 야마토정권의 장군 아라타와케와 가가와케는 이름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문헌에서는 전혀 확인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게다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장군 목라근자는 삼국사기에서 가족력 확인이 가능한 백제인이라는 것이다.
임나를 경영한 것은 왜가 아니라 백제였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백제와 야마토 정권의 특수한 관계를 설명하고, 용병지원을 주고받던 관계라는 설정 위에서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일본이 곧잘 인용하는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도 설명한다. 한반도에서 고구려와 싸운 왜는 백제·왜·가야 3국 연합군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 그러나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활약한 일본의 존재를 없는 것인양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임나일본부설의 진상을 파악하려면 일본서기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서, 특히 삼국사기도 알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도 주장한다. 일본서기에는 6세기에 왜의 한반도 진출이 가장 활발했던 것처럼 나와 있지만 6세기를 다루는 삼국사기에는 왜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송서의 기록도 보자. 북한 역사학자 김석형 김일성대 교수는 1970년대에 왜 5왕이 군사권을 주장한 나라 중 하나인 모한과 진한이 한반도에 없었던 나라라는 점을 근거로 7국이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에 건설된 분국이었다는 주장까지 한 바 있다. 그러나 저자는 백제의 지원 세력에 불과했던 왜가 스스로를 주체세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에 군사권 주장을 하게 된 것으로 본다.
1차 사료와 유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들의 펜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독자에게,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그럴 리가 없어’, 혹은 ‘응당 그럴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 말고 냉철한 눈으로 진실을 응시해 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 한일 양국 학자들의 지속적인 교류와 학술회의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그치지 않는 한, 임나일본부설은 1500여년 전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