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의 '성경과골프'(76)
입력 2010-12-27 15:57
“선생님은 골프를 참으로 잘 즐기시는 것 같아 보기가 좋습니다.” 라운드를 마치고 회계사 L씨가 나에게 건넨 말이었다. 과거에는 동반자들로부터 다른 종류의 인사말을 많이 들었다. “역시 골프 매니아 다우시군요.” “골프 사랑이 대단하십니다.” “아주 꼼꼼히 잘 적으시네요.” “오늘 한 수 잘 배웠습니다.” 등등…. 구력이 20년이 넘었지만, 실제로 골프 게임의 기본 정신이나, 다른 플레이어에 대한 배려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을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다. 그 전에도 골프룰 북은 읽었지만, 제1장의 에티켓, 코스에서의 행동에 관하여는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연구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워터 해저드에 빠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또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구제를 받는가, 어떤 경우에 벌타를 먹는가를 생각하면서 오로지 타수를 줄이는 데만 집중하였던 게 사실이다.
에티켓 장 마지막에는 결론으로, “플레이어가 본 장의 지침을 준수할 경우 더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플레이어인 나도 재미있고, 동반자도 재미있도록 게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골프장에서 가장 나쁜 날이 그래도 사무실 안에서 보내는 가장 좋은 날보다는 좋다”라는 말이 있는데, 많은 골퍼들은 비즈니스 골프를 할 때 어떤 의무감만 가지고 라운드하니 골프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라운드의 절반 가량은 비즈니스를 위해 골프를 하였는데, 상대방뿐 아니라 내 자신도 같이 즐거워야 가치 있는 라운드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연구를 많이 했었다.
장타자들과의 라운드에서는 주로 스킨스 게임을, 또박이 형이나 전략가 타입들과는 스트로크 게임을 하였으나, 핸디가 많이 차이가 나는 동반자들과는 어떤 게임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초보자들은 내기 자체에 큰 부담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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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부로 하는 말은 비수
한 라운드 4~5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정말로 긴 시간이다. 그래서 좋은 동반자를 만나면 라운드가 신나고 즐거우며, 고약한 동반자가 걸리게 되면 라운드가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게 되며 스코어까지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주말 라운드에 약 30만원이라는 거금이 소요되면 어떤 때는 돈이 아까워서 속 뒤집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정말로 동반자를 위하여서 좋은 말을 할 줄 아는 매너를 가져야 한다. 성경에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라고 했다
2. 상대방의 불행을 공개적으로 바라다니….
동반자가 친 티샷이 훅이 나서 위험한 쪽으로 날아가고 있는데, “OB, OB, OB나 되라. Oh 예 OB” 라고 말한다거나, 그린 앞쪽에 꼽힌 핀을 향해 아이언 샷을 한 플레이어에게, “그만 가라 그만 가, 거기 벙커 벙커로…. 오우 나이스 벙커” 라고 주문을 외는 골퍼들이 있다. 또한 롱 퍼팅을 멋있게 한 플레이어에게 “안 돼, Oh No. 들어가면 안 돼, 아이쿠 들어가는 줄 알았네.” 이렇게 상대방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바라는 골퍼가 의외로 많다. 아무래도 내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한두 번 농담으로 그런다면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다”고 너그럽게 이해하겠지만, 매번 그런 식으로 상대방의 불행을 바란다면 “저런 녀석은 번개도 맞지 않나?”하면서 미움을 받게 된다. 결국 자업자득이 된다.
3. 제발 구시렁 대지 좀 말아요!
한참 지난 홀의 아까운 퍼트를 놓고 라운딩 내내 “에이 참 그 퍼팅이 들어갔어야 했는데… 아깝게 버디를 놓쳤네. 바보 같으니라고…” 구시렁 구시렁.
수시로 아이언 샷 토핑에 뒤땅에 가지가지 진기명기 실수를 하면서도, “하필 그 때 뒤땅이 나와 핀에 못 붙였네. 파로 막을 수 있었는데…” 구시렁 구시렁.
한 라운드에 14번 드라이버를 치면 페어웨이를 절반도 지키지 못하고 OB도 심심치 않게 내면서, “그 홀에서 티샷이 조금만 더 나가서 숏 아이언만 잡았다면 확 달라졌을 텐데…” 구시렁 구시렁
수없이 복기하며 다니고 심지어 욕탕에 앉아서도 주절주절 읊어대는 골퍼가 있다. 한두 번까지는 듣고 맞장구도 쳐줄 만한데 수도 없이 반복되면 정말 짜증이 난다. 함께 라운드한 동반자에게도 이럴진대 그 상황을 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얘기할지 뻔한 일이다. 물론 놓친 고기는 다 월척이라는 낚시 이야기처럼 골프 얘기에 어느 정도 허풍이 있다지만, 어쩌다 잡은 버디 하나를 가지고 수없이 우려먹고, 실력이 모자라 실수한 샷이 마치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 것처럼 통탄해하는 허풍, 글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성숙한 골퍼는 아깝게 놓친 이븐파 스코어, 홀을 스치며 지나간 이글 퍼팅 같은 것을 지켜본 동반자들이 아깝다고 위로할 때, “그것이 바로 골프입니다” 하면서 껄껄 웃는 여유를 갖고 있다.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