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감동’ 정치드라마… 알고 보면 허풍 심하다

입력 2010-12-26 18:52


안방극장에 정치 바람이 거세다. 여성 대통령 서혜림(고현정)의 성공기를 그린 SBS ‘대물’이 지난 23일 종영했으며, 신인 정치인 장일준(최수종)의 대통령 당선기를 담은 KBS 2TV ‘프레지던트’가 4회까지 방영된 상태다. 현실 정치를 가까이 접해온 정치 컨설턴트들은 올해 새롭게 선보인 정치 드라마 두 편을 어떻게 바라볼까.

전문가들은 이들 정치 드라마가 현실 정치를 세밀하게 묘사하지 못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대물’에서 서혜림이 보궐선거 유세 중 걸그룹 ‘레인보우’의 춤을 추자 시민들이 환호하는 점, 현직검사가 상대 후보를 조사하고 관련 자료를 그 후보 캠프에 넘겨주는 모습 등이 그 예다. ‘프레지던트’에서는 장일준 아내 조소희(하희라)가 장일준이 초청된 토론회에 대신 나갈 정도로 앞에 나서는 점, 장일준이 참모진 실수로 비슷한 시간대에 4∼5개의 만찬을 동시에 소화하는 내용 등이 지적됐다.

이재술 인뱅크코리아 대표는 “17대 총선 땐 탄핵, 18대 총선 땐 참여정부 심판론 등 각 선거마다 핵심 쟁점이 있었는데 드라마에선 주인공들이 핵심 이슈에 대한 말은 없고 임기응변식 재주로 지지자를 끌어 모은다. 이런 설정은 복잡한 정치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몰입도를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감성에 호소하는 대사 일변인 점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대물’에서 서혜림은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 “정치인에게 회초리를 들어달라”며 정책 보다는 감성적 내용만 강하게 외친다. ‘프레지던트’에서 장일준도 마찬가지다. 청년실업 해결책에 대해서 “투표를 안한 청년들 책임…청년 실업자들의 분노와 설움을 표로 보여 달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청년실업, 무상급식 등 시의성을 담고 있는 이슈들은 드라마에서 갈등을 촉발하거나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영주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은 “제작진이 정치를 표피적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 자체를 꾸준히 따라가면서 분석하는 힘이 없다. 실제 정치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이슈들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다 보니 정치 드라마가 러브 라인이나 표피적인 선거 승리에 대한 내용으로만 흐르게 된다”고 말했다.

TV 토론회에서 서혜림이 연설을 하자 싸늘하던 관객들이 갑자기 기립박수를 치는 식으로 주인공들이 쉽게 지지를 얻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도 문제다. 주인공이 대부분의 위기를 우연의 힘으로 해결하다보니 현실 정치의 역동성을 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주인공이 초고속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 또한 어느 나라에서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 “물론 드라마에서 흥미성은 필요하지만 권력의 속성이나 정치의 기본 원리를 고려하지 않은 설정은 정치를 희화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선희 기자, 백상진 인턴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