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1시간만에 ‘총알 구조’… 성탄연휴의 기적

입력 2010-12-26 20:45


목포해경 소속 3009경비함이 신속한 구조활동을 펼쳐 침몰 직전의 항로페리2호 승선자 15명을 무사히 구조해낸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평소 중국 어선을 나포하면서 익혀둔 빼어난 소형단정 조작 실력이나 대원들의 견고한 팀워크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기상 악천후 탓에 구조가 여의치 않은 것은 물론 사고 해역에 도착하기 전 항로페리2호가 침몰해 승선자들이 자칫 수장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전남 신안군 만재도 남쪽 해상에서 전복된 항로페리2호가 가거도항을 출항한 것은 26일 오전 7시25분. 서남해의 절해고도로 불릴 만큼 절경이 빼어나 관광객들이 몰리는 가거도와 목포항과의 직선거리는 165㎞로 쾌속선으로도 4~5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하지만 기상악화가 잦아 뱃길이 자주 끊기는 이곳은 민간 여객선과 화물선 선장 등이 가장 운항을 꺼리는 까다로운 노선 중 한곳이다.

전날인 성탄절에도 기상이 좋지 않아 운항을 하지 않았던 이 노선에서 조심스레 목포를 향해 오던 항로페리2호는 출항한 지 1시간30분쯤 지났을 때 높이 4∼5m의 높은 파도를 연거푸 맞아 무게중심을 잃고 선체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 배의 선장 김상용(60)씨가 30도쯤 기운 선체와 바닷물이 찬 갑판 상태로는 도저히 정상 운항이 어렵게 판단하고 다급하게 근거리 무전망(VHF)을 통해 구조요청을 한 것은 출항한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은 오전 9시15분쯤.

바다가 거칠 때는 파도치는 쪽으로 뱃머리를 정면으로 돌려 파고를 넘어야 안전하다는 게 바닷사람들의 상식이다. 하지만 선체 앞뒤는 물론 옆면에서까지 갑자기 파도가 칠 때는 짧은 시간에 재빠른 방향 회전이 힘든 배의 특성상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바닷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른 바 ‘삼각파도’가 그것이다.

게다가 선박에 실린 승용차 등 무거운 화물까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배는 전복되기 십상이다.

밧줄로 묶였던 화물차 4대의 고정장치가 풀어진 항로페리2호 역시 이 같은 전철을 밟아 전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배에는 그동안 기상악화 등으로 발이 묶였던 가거도중학교 교사 6명과 학생 1명, 화물차 기사 4명, 선원 3명 등이 타고 있었다. 화물차도 4대가 실려 있었다.

신안 흑산면 가거도 인근에서 중국 어선 불법조업을 감시하던 3009함은 사고배의 무전요청을 접수하자마자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구조 및 이송=3009함이 경계근무를 펼치던 가거도 해상에서 현장까지는 22.5㎞의 거리. 강풍과 높은 파도로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해상의 구조 여건은 최악이었다.

김 함장은 즉각 27노트(50㎞) ‘전속력 현장출동’을 지시한 뒤 무전을 통해 항로페리2호 선장에게 “구조하러 가고 있으니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려 달라”며 안심시켰다.

사고 해역으로 가는 동안 경비함도 높은 파도에 맞아 좌우로 흔들리는 등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30여분 만에 도착한 현장은 화물선이 침몰하기 직전의 다급한 상황이었다.

경비함 도착 직후 사고배의 선체는 50도 이상 급속도로 기울어 갑판에 서 있던 승선자 6명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다로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급속한 체온 하락으로 이들의 생명은 분초를 다투는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3009함은 높은 파도에도 아랑곳없이 즉시 고속보트 단정 2척을 내려 보내 바닷물에 빠진 승객 구조에 나섰다. 높은 파도로 단정 역시 가랑잎 같은 신세였지만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이들의 비명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아수라장이 된 해상에서 목숨을 건 구조작전이 착착 진행됐다.

침착하게 수면에서 표류하던 승객을 먼저 구한 해경대원들은 뒤집힌 배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9명도 잇따라 무사히 구조했다. 화물선은 뱃바닥을 훤히 드러낸 채 물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해경대원들은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 도착해 구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여분. ‘악천후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며 해경과 구조자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구조된 이들이 저체온증에 시달리자 3009함은 함 내에 있는 직원용 찜질방으로 옮겨 이들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국내 첫 최신예 하이브리드함이기도 한 3009함은 구조 직후 사고배 승선자를 목포항으로 옮겼다. 저체온증 증세를 호소한 일부 승선자들은 목포 한국병원과 중앙병원, 기독병원 등 3곳에서 분산 치료를 받은 뒤 대부분 귀가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