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파일] 노인 암 환자 증가 대비를

입력 2010-12-26 17:25


얼마 전 10년 넘게 진료해 왔던 환자 한 분의 부고를 접했다. 군 장성 출신으로 84세의 고령임에도 정신이 강건했던 분이다.

한번은 6개월 만에 체중이 빠져 여윈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식도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오랫동안 그를 진료해 온 주치의로서 나는 중요한 진단을 놓친 것에 대해 죄송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는 처음 증상이 생겼을 때 모 대학병원에 가서 식도암 진단을 받았는데, 나이가 많아 수술을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치료 받기를 원해 다른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았다. 그 후 7년 동안 암의 재발은 없었으며, 아무 제약 없는 식생활과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다 마지막에는 폐렴으로 사망했다.

만약 그가 처음 병원에서 권유한 대로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식도암이 진행되어 음식 섭취가 불가능해지고 몇 년을 더 버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다. 평생 동안 남자는 3명 중 1명이, 여자는 4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 암은 연령과 함께 증가해 80대 초반에 발생률이 최고조에 이른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고령인구가 많아지면 노인 암 환자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암의 진단과 치료에서 차별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살 만큼 살았기 때문에, 또는 기대여명(餘命)이 길지 않기 때문에 암 조기진단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과정이 힘들며 합병증 우려가 높다고 수술이나 항암치료 기회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차단하는 경우도 흔하다. 나이가 들면 쇠약하여 정상 활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 노인의 남은 삶은 큰 의미가 없다는 편견이 적절하고 충분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에서 14%로 배가 되는데 프랑스는 115년, 미국은 69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18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사회는 전례 없이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데 노년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가족뿐 아니라 노인 환자 본인, 그리고 의사들에게도 많다. 노인 암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기대여명이지만, 같은 나이라고 해도 건강상태에 따라 기대여명은 달라진다. 통계적으로 80세 여성의 평균 기대 여명은 8.6년이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상위 25% 노인은 기대여명이 13년이고, 건강이 나쁜 하위 25%는 4.6년에 불과하다.

달력 나이를 잣대로 사용하기보다는 노인의 정신기능과 신체기능을 적절히 평가하고 이해해야 한다. 노년의 삶을 존중하는 따뜻한 시선과 건강한 노화를 추구하는 의료진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윤호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