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입력 2010-12-26 19:08
몸살은 몸이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라지요? 한 차례 앓고 나니 창가의 한 줄기 빛도 새롭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영혼에 쌓인 독소와 삶의 찌꺼기들을 날려 보내는 작업이었네요. 여전히 아침 해는 솟았고, 삶은 계속되고 있어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다시 읽으니 몸의 회복과 함께 마음의 회복도 빨라진 느낌이네요. 최근 지인에 대한 실망감으로 마음이 상했는데 이제 그만 떨쳐버리겠어요. ‘인간에 대한 학대 가운데서 가장 나쁜 것은 마음을 헐뜯는 것’이라 했으니 상대에게 반격하기보다는 침묵할래요. 경험으로 알잖아요? 상처를 치유하는 최선의 방법은 곱씹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는 것이라고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듯이 새 마음을 맞아들이려고요. 어디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던가요? 어디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던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일이 참 많네요. 김치 담글 줄 모르는 엉터리 주부인데도 엄마부터 시작해 시누이, 집사님께서 보내주신 김장김치로 겨울 내내 먹고 남을 만큼 풍성하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무조건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들과 차 마시고 밥 먹을 수 있음이 감사하잖아요. 학위논문을 못 쓰고 있어도 인내하며 안내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고, 매일 짧게 한 줄이라도 메일로 하루의 안녕을 축복해주는 어른이 계시고, 연구실 앞에 우렁각시처럼 맛난 것들을 놓아두고 가시는 미화원 아주머니의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그뿐인가요. 며느리가 믿는 하나님 믿기로 하시고 80세에 세례를 받으신 아버님이 계시고, 칼럼을 읽고 감동 받았다며 전혀 모르는 분께서 육필로 쓰신 팬레터를 보내주시고,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면 돈도 받지 않고 드링크제부터 내미는 동네 약국 아줌마도 계시잖아요. 자정이 넘은 시각에 핸드폰 통화버튼을 잘못 눌러버렸어도 무조건 반갑고 고맙다는 말부터 건네는 친구가 있고, 급한 성격을 못 다스리고 화부터 버럭 내고 말았어도 스스로 기분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으니 나는 가진 것이 참 많은 사람 아닌가요?
옥, 당신은 많은 모순점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불완전한 인격에 천방지축 영혼의 소유자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싶은 근본 마음을 가지고 있고, 감사할 조건이 많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니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너무 열심히만 살려고 하지 말고 가끔 쉽시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며 상처 받아가며 그렇게 삽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옥, 당신은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나를 안을 수 있다면 꼬옥 안아주고 싶습니다. 실수도 은총이라 하였으니 당신을 더욱 성장시키고 완성해 나가는 자양분인 당신의 실수들을 그냥 껴안으세요.
몹시 추운 겨울밤, 거리를 걷다가 움츠린 어깨를 순간 확 펴며 시원한 여름바람이라고 생각해버렸더니 거짓말처럼 매섭던 추위가 시원하게 느껴졌잖아요. 옥, 내 마음의 행로는 새해 받을 복들을 알아차리고 있어요. 해피 뉴 이어!
김애옥(동아방송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