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영범] 복지포퓰리즘 경계를

입력 2010-12-26 19:06


내년도 예산을 보면 복지예산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안보다 1214억원 증액된 86조4000억원이다. 총예산 대비 복지예산 비중은 28%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올해 대비 증가율은 6.3%로 총예산 증가율 5.5%보다 높다. 복지예산이 증액된 것은 국회의원들이 18개월 앞으로 다가온 다음 총선을 의식해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취약계층 관련 지원을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경로당 난방비 예산을 400억원 이상, 취약계층 주거환경 예산을 300억원 이상, 참전명예수당을 1000억원 가까이 올렸다.

우리나라 사회적 안전망은 매우 취약하다. 선진국 중 사회적 복지가 제일 약하다는 미국도 우리보다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 실업급여만 해도 우리나라는 실직되기 이전 급여의 33% 수준이지만 미국은 45%가 넘는다. 우리의 실업급여 최고 한도는 고용보험 제도가 도입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15% 정도 올라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줄었다. 국민연금 혜택도 아직은 제한적이다. 우리의 사회안전망이 지금보다는 강화되어야 하나 이제 막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려는 우리로서는 복지 현실을 냉철히 점검하고 선진국의 복지정책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여야의 정치적 이익을 떠난 초국가적 복지정책의 기조를 정립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치 현실을 보면 복지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현재에도 무상급식을 놓고 벌어지는 여야 간 다툼과 힘겨루기가 교육 현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특히 최근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근혜 의원이 개인의 생애주기에 맞추어 맞춤형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을 국가 비전의 하나로 제시하자 야당은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복지는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고 알맹이가 없는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등 2년여 남은 차기 대선에서 복지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정치권의 다툼이 치열하다.

우리 사회의 상대적 박탈감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2000년대 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소득에 비해 2003년에는 4.1배였으나 작년에는 4.9배로 높아졌다. 중위소득 50% 미만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10%에서 2009년 13%로 늘었다. 경제 전체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48.7%로 전년보다 0.6% 포인트 높아졌다. 국내 상위 100대 기업 출하액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에 50%를 넘어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거나 줄고 있지 않고 40·50대에 직장에서 밀려난 중장년층이 억지로 자영업자가 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공적 복지 혜택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갈수록 커질 것이며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여야 구분 없이 선심성 공약이나 정책을 남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선거를 통해 국가 경영을 하는 자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집권세력이나 차기 집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포퓰리즘에 빠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공적 복지 혜택을 확대하기 전에 현재의 사회적 복지 구조를 합리화하는 노력을 우선하여야 한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현금 보조와 함께 30여개 공적 기관으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고 있고, 현금 급여와 각종 혜택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합하면 월 200만원이 된다는 현실은 취약하다는 우리의 사회보장 제도가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소득 노인에 대한 교통비 지원이 부적절하다는 발언을 한 국무총리가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다는 사과를 하고, 영국이 학비보조금 삭감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에서 보듯 일단 높아진 복지 혜택을 낮추기는 매우 어렵다. 알맹이는 큰 차이가 없고 포장만 다른 공약을 내놓고 경쟁을 하거나 선택적 복지, 보편적 복지 가운데 어는 것이 우선인가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기보다 새로운 사회적 복지 제도 도입은 전체적인 복지정책의 틀 안에서 국가의 재정부담 능력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여야 한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