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수지 (1) ‘간호계의 노벨상’ 수상 감격의 자리에
입력 2010-12-26 19:36
나는 간호사다. 아주 어렸을 적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나이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나는 간호사로 살아왔다. 다시 태어나도 간호사이고 싶다. 주님이 나를 돌보셨듯이 나도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 이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 믿는다.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2001년 4월, 안식년을 맞아 하와이 호놀룰루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유엔국제개발기구(UNDP) 한국주재 대표였던 미스터 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교수님, 축하합니다! 됐어요!”
내가 국제간호대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니, 내가 그런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다니….’
국제간호대상은 국제나이팅게일재단에서 2년에 한번 주는 간호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영광스런 상이다. 국제간호협의회 창설 100주년인 1999년 제정됐는데, 세계 123개 회원국 간호협회에서 추천된 후보자 중 가장 공헌이 큰 한 사람을 선정해 시상한다. 1회 수상자는 캐나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마거릿 힐슨이었고, 내가 두 번째 수상자였다. 정신질환자를 간호하면서 개발하게 된 ‘대인적 돌봄(나중에 ‘사람 돌봄’으로 변경) 이론’이 UNDP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덕분이었다.
사실 여러 환자 중에서도 치료하기 가장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것이 바로 정신과 환자들이다. 정신질환은 치료를 해도 1∼2년 만에 회복되지 않는다. 더욱이 정신병원이나 요양원을 전전하며 장기간 입원하다가 퇴원을 하고 세상에 나오면 일상생활조차 스스로 못하는 이가 많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이것이 당시 늘 내가 고민하던 문제였다. 그리고 이 고민이 ‘사람 돌봄’ 이론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시상식은 그해 6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국제간호협의회 총회 기간 중이라 123개국 대표 간호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한복을 입고 식장에 갔다. 흥분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20분간의 수상 소감 발표가 예정돼 있었다. 그때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 선 기분이었다. 애국가가 식장에 울려 퍼지는 동안 내가 ‘나의 길에서’ 우리나라를 빛냈다는 진한 감동이 온 몸 가득 일었다. 나는 그때까지 ‘간호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지, 간호를 통해 나라를 빛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아! 결국 이렇게 나의 꿈이 이뤄지는구나….’
처음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순간부터 이 자리에 서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간호의 현장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특히 ‘사람 돌봄’ 이론을 개발하기까지 힘들었지만 보람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