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경계 허무는 ‘亞소설’ 가능성 엿보다
입력 2010-12-24 17:35
2010년 한국문학은
2010년 한국문학은 세계문학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타진한 현장이었다. 아울러 고은 시인의 역작 ‘만인보’ 완간, 황석영의 ‘강남몽’ 표절 시비, 한국작가회의의 ‘저항의 글쓰기 운동’ 등은 올 한 해 한국문학의 빛과 그늘로 기록된다.
◇세계문학과의 교류= 단국대 주최로 지난 10월 열린 세계작가페스티벌에는 7개국 11명의 국외 작가와 29명의 국내 작가가 참여해 한국 문학과 외국 문학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했다.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한 ‘제17회 세계작가와의 대화’와 부산문화재단이 동남아의 유망 작가를 초청해 문학포럼을 개최한 것도 눈에 띄는 행사였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개국 문학인들이 각국의 문예지를 통해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가동되었다. 한국의 ‘자음과모음’, 중국의 ‘소설계(小說界)’, 일본의 ‘신초(新潮)’는 ‘도시’와 ‘성(性)’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3개국 작가가 쓴 소설을 동시 게재해 국경을 뛰어넘는 아시아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고은 시인의 연작시집 ‘만인보’ 완간은 올 한국문학이 거둔 뜻깊은 수확이다. 여세를 몰아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도 예상되었다. AP통신 등은 수상자 발표 당일 고은 시인을 유력 수상 후보로 꼽아 기대를 한껏 높였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빗나갔다. 이와 관련,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세계적인 시야에서 볼 때 한국문학의 빈곤은 여전히 엄연한 현실”이라고 논평한 것은 한국문학이 더 깊이를 다져야한다는 의미에서 깊은 울림을 주었다.
◇황석영 표절 시비= 소설가 황석영의 장편 ‘강남몽’을 둘러싼 표절 시비는 타인의 저작물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윤색할 때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에 대한 창작자의 자기 검열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의 일부가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라는 책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는 의혹에 대해 황씨는 “출처를 안 밝힌 것은 불찰”이라고 잘못을 시인했지만 이 책의 저자인 조성식 신동아 기자는 “해명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책의 내용은 저작권 영역에 속한다”고 반박했다. ‘강남몽’에 대해서는 “창작보다는 자료의 재구성에 치중한 조립소설에 가깝다”(문학평론가 이명원)는 매서운 비판도 잇따랐다.
◇작가회의, 저항의 글쓰기 운동= 지난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함으로서 촉발된 한국작가회의의 ‘저항의 글쓰기 운동’은 권력과 예술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회의는 “이 사건은 비판적 사유와 창조적 역량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는 일”이라며 보조금 수령을 거부하고 기관지인 ‘내일을 여는 작가’의 발행을 중단했다. 결국 이 사건은 국가기구가 지원금을 빌미로 문화예술영역에 대한 간접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고 그 여진은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 장편소설 붐= 인터넷 매체를 통한 장편소설 연재가 본격화되면서 작가들의 집필 역량이 대거 장편 쪽으로 기울었다. 황석영의 ‘강남몽’을 필두로 조정래의 ‘하수아비춤’, 고종석의 ‘독고준’, 박범신의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이수광의 ‘그리워하다가 죽으리’ 등이 모두 인터넷 소설이었다. 최근에는 출판사와 포털 사이트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거나 서로 협력해 운영하는 웹진이 인터넷 연재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들의 콘텐츠 확보를 위한 수요 급증에 따라, 혹은 연재가 용이하다는 작가들의 편의에 따라 양산되는 장편소설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외부 상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해방된 문학이 새로운 자립의 길을 모색하지 못한다면 문학 자체가 철저히 스토리텔링 시장에 종속돼 단순한 콘텐츠로서의 제한된 역할에 만족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