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 100달러씩… 美 ‘비밀산타’ 올해도 온정 손길

입력 2010-12-24 17:26

덥수룩한 흰 수염도 없다. 불룩하게 배도 나오지 않았다.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도 없다.

대신 그녀는 붉은 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검은 스카프로 멋을 낸 채 미국 미시시피강의 찬 바람을 맞으며 돈을 나눠줄 가난한 이웃을 찾고 있다. 사업가인 그녀는 썰매 대신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그녀는 버스정류장에서 작은 소년을 데리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100달러짜리 지폐를 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했다.

대학생으로서 2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 라레이샤 스타크(20)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다 환한 웃음을 지었다. 스타크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길이었다”며 “매우 고맙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 활동 중인 그녀는 올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미국 전역에서 수천 달러의 현금을 나눠주는 10여명의 비밀산타 중 한 명이다.

로이터통신은 23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나눠주는 비밀산타회(Society of Secret Santas) 활동상을 소개했다. 비밀 산타는 클리블랜드 캔자스시티, 디트로이트 등 미 전역을 누비고 있다. 피닉스에선 또 다른 비밀 산타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누군가에게 불쑥 현금을 줬고, 오클라호마에선 휠체어에 앉아 있던 장애인이 100달러의 선물을 받기도 했다.

비밀산타회 역사는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노숙자 생활을 했던 사업가 래리 스튜어트가 한겨울 빈민에게 현금 선물을 주면서 시작됐다. 스튜어트는 ‘드라이브 인 식당’에 들렀다가 추운 날씨에 외투도 없이 음식을 나르는 여종업원에게 20달러를 팁으로 건넸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 돈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깨달은 바가 있는 스튜어트는 은행으로 달려가 200달러를 인출했다. 그리곤 거리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말없이 5달러 혹은 10달러짜리 지폐를 건넸다고 한다.

스튜어트는 2006년까지 총 150만 달러(17억3000만원)의 자금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암을 이기지 못하고 2007년 타계했다.

그의 사후 비밀산타회는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부 금액은 1달러에서 최고 10만 달러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낸 이가 모두 ‘산타클로스’라는 명의로 돼 있는 것이다.

비밀 산타 A씨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나눠줄 만큼의 자금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