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는 실력이 아니라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쇼트트랙 고교대회도 승부조작

입력 2010-12-23 18:28

쇼트트랙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에 이어 고교대회마저 승부조작이 만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의 대표적인 효자종목 쇼트트랙이 ‘짜고 치는 종목’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3일 고교 쇼트트랙 대회에서 가위바위보로 순위를 나눠 승부를 조작한 혐의(업무방해)로 국가대표 출신 이준호(45)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쇼트트랙 코치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 등은 지난 3월 성남시장배 전국 남녀 중고 쇼트트랙대회에서 고3 선수들에게 입상을 몰아주기 위해 순위를 미리 짜맞춘 혐의다. 심지어 이들은 입상대상 선수들이 순위 경쟁을 하다가 넘어지지 않도록 가위바위보로 순위까지 정해놨다.

이씨는 승부 조작을 거부한 일부 코치에게 “경기 중 선수를 부상입히겠다”고 협박하고 승부조작에 가담한 코치들에겐 승부조작 사실을 절대 누설하지 말도록 ‘백지각서’까지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제자들을 대학에 많이 진학시켜 코치로서 인지도를 높이려는 욕심이 앞섰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씨는 1985∼1998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한 뒤 현재 KBS 스포츠 해설위원을 맡고 있 다. 지난 3월에도 국가대표 승부조작 논란이 불거질 때 ‘조작이 없었다’며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었다.

쇼트트랙계 주변에선 오래 전부터 출전 양보, 진로방해 등의 수법으로 승부조작을 벌인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 지난 4월 대한체육회는 올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정수와 곽윤기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목별 출전권을 두고 담합한 사실을 적발해 두 명에게 자격정지 6개월씩 징계를 내렸고, 빙상연맹 집행부 임원진이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기도 했다.

쇼트트랙에서 승부조작이 만연한 것은 쇼트트랙이 동계 스포츠의 메달밭인 만큼 “금메달이나 대학 입학을 서로 나눠먹자”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있기 때문이다.

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문제가 된 성남시장배 대회는 폐지됐다”면서 “타임레이스 등 새롭게 도입한 경기 운영 방식을 계속해서 보완하는 등 제도적으로 승부조작을 완전히 근절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모규엽 이용상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