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크리스마스 선물

입력 2010-12-23 17:45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면서 가족, 연인, 친구들에게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하며 마음이 잔뜩 분주해지는 날이다.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강원도까지 번졌고,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남북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사랑과 평화를 나누어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가 어째 뒤숭숭하다. 낭만적 감정이 호사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씁쓸하다.

한 취업 포털이 남녀 직장인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에 관해 조사를 실시했는데, 주고도 욕먹는 선물 1위가 꽃다발이란다. 그 다음이 책 또는 CD이고, 향수 및 화장품, 정성이 담긴 크리스마스 카드 순으로 조사됐다.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로는 신발 목도리 장갑 등 의류, 2위는 현금이라고 한다.

지금보다 느리게 살던 시절, 나는 가장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정성스럽게 만든 카드와 꽃다발이었는데, 시대가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정성스런 수고가 물질적인 것으로 대체되면서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또한 꽃다발 다음이 책이라니! 책으로 밥을 먹고 사는 나로서는 마음이 쓰리다. ‘출판저널’은 독자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있는데, 독자들이 책을 받고선 최악의 선물이라고 생각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지 세 장에 걸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사람은 올해 서른세 살이고 현재 경북 북부1교도소에서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못했지만 책과 뒤늦게 친구가 되어 여러 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위탁 공장에서 4년 일해서 30만원을 벌었는데, 3분의 1은 쓸 수 있다며, 우리 잡지를 10만원에 5년 정도 구독을 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어 달라는 내용이었다(1년 정기구독료는 7만7000원이다). 앞으로도 7년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한다는 그 사람은 사회에서는 책의 유익함을 못 느꼈는데, 역시 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시인 박목월 선생은 수필집 ‘밤에 쓴 인생론’에서 “결정적인 책을 발견하는 것은 그야말로 가장 귀한 스승을 만나는 일이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크게 변할 수 있다”고 했다. 책 속에서 박목월 선생은 체호프의 ‘내기’라는 짤막한 소설 이야기를 꺼낸다. “장난삼아 내기를 걸게 된 것이 진담이 되어 어느 사람이 15년간 지하실에 갇혀 있게 되는 이야기인데, 죄수 아닌 수인은 처음 몇 해 동안은 술과 음악을 혼자서 즐기다가 몇 해가 지나자 책을 남독하게 된다. 그러기를 두서너 해 지내고서는 성경책 한 권만을 요구하게 되고 끝내 성경책만을 읽으며 그 길고도 고독한 세월을 한 칸 방에서 이겨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단 한 권의 책으로도 인격의 연마와 교양의 함양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최악의 크리스마스 선물 중 하나인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고, 세상이 아무리 팍팍하여도 우리 사는 세상은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