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체납자들이 큰소리 치는 사회

입력 2010-12-23 17:45


집으로 속도위반 과태료 청구서가 날아오면 기분이 확 상하기 마련이다. 재산세 등 세금 청구서도 받아서 기분 좋은 사람 없다. 돈 나가는데 좋아한다면 정상인이 아닐 게다.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은 기꺼이 납부를 한다. 선량한 시민들은 행정기관이 고지한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기껏 피운다는 요령이 납부기한 마지막 날에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TV에 가끔 비치는 악덕 체납자들의 행태는 정말로 기가 막힐 지경이다. 온갖 호화생활을 하면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세금을 체납하고, 이를 받으러 간 세무직원들을 무슨 빚쟁이 대하듯 폭언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그 장면만 놓고 보면 마치 체납자는 정당하고 공무원이 나쁜 사람들 같다. 최근 성남시 직원들이 모 은행 지점의 체납자 명의 대여금고를 수색한 결과 각종 귀금속에다 심지어 수십억원짜리 약속어음까지 나왔다. 그렇게 재산을 숨겨두고는 세금 1000만원을 내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도대체 저들은 어떤 품성의 사람들인가.

너무나 뻔뻔스러운 군상들

시민들이 분개하는 것은 체납자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에 배신감을 느낀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방치하고 있는지, 그런 사람들이 활개치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꾸며주고 있는지에 분노한다. 혹시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내가 오히려 바보가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갖게 한다.

정부와 지자체들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액 체납자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서울시 38세금기동대를 비롯해 지자체 세무직원들이 방문조사를 벌이는 등 체납 세금을 받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명단공개 기준이 국세의 경우 7억원, 지방세는 1억원 이상으로 한정돼 있는데다 관보나 기관 홈페이지 공개가 이미 양심을 버린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해 체납 국세는 20조6685억원으로 전체 국세의 12.6%, 지방세는 2008년 기준 3조4096억원으로 전체의 8.5%에 달하고 있다. 물론 납세자가 파산하는 등 돈이 없어서 못 내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재산이 있는데도 아까워서 안 내고 버티는 것이라면 이는 재정확보뿐 아니라 공정사회 실현 차원에서도 절대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국세청이나 지자체에서는 인력 부족을 하소연한다. 지자체의 경우 체납담당 공무원 한 사람이 평균 2만건 이상을 담당하기 때문에 일부 고액체납자 위주로 징수활동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지금 처럼 소극적 징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무원을 대폭 증원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추징세액이 인건비에 못 미치지만 않는다면 사회기강 확립이라는 큰 소득을 얻게 되는 것 아닌가.

사회기강 차원서 일소해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공무원 증원이 부담스럽다면 채권추심업계가 요구하는 대로 민간에 위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정안전부는 세금추징이 공무원 영역이라 민간 위탁은 어렵다는 입장인 모양인데, 교도소까지 민간에 위탁하는 마당에 주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미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지방세 체납 징수를 민간에 위탁하고 있고, 일본도 2005년부터 민간 위탁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공무원을 늘리든 민간에 위탁하든 적지 않은 신규고용 창출 효과까지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납세는 국민의 기본 의무다. 이를 기피하는 사람이 의무를 다하는 사람보다 이득을 보면 사회는 균열이 가고 국가 기강은 무너지게 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면 직무유기다. 방법이야 어찌됐든 악덕 체납자들이 성실 납세자를 비웃으며 낄낄대는 모습을 국민이 더 이상 보지 않게 하라.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