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태로 본 ‘서해’… 남·북·미·중 ‘갈등의 바다’ 서해에 갇히다
입력 2010-12-23 18:05
올 1월 27일과 8월 9일 북한은 해안포 사격훈련을 했다. 8월 23∼25일엔 GPS(위성항법시스템) 신호를 교란하는 전자전을 벌였다. 3월엔 천안함을 침몰시켰고 11월 연평도를 포격했다. 모두 서해에서 벌어졌다.
매번 분석된 원인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 “2010년 서해는 정말 특별했다.”
2010년 서해를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엉켜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지낸 군사 전문지 디앤디포커스 김종대(45) 편집인은 “지금 나오는 분석 중 2010년 서해를 설명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단언한다.
“서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분석이 ‘북한 내부 사정 때문’이란 것인데, 북한 체제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3대 세습도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 2010년을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다.”
그는 “서해 현장의 군사 정세에 현미경을 들이대야 답이 보인다”며 국방부가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NLL(북방한계선) 대비계획’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200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1월 17일 북한은 총참모부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조선 서해에는 북방한계선이 아니라 우리가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1998년 작전계획 5027 비난성명 이후 총참모부가 성명을 낸 것은 처음이었다. 북은 ‘대남 전면대결태세 진입’도 선언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이어받았다. 조평통은 같은 달 30일 “서해 북방한계선은 불법적인 것이다. 남북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된 기존 모든 합의를 무효화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초강수였다.
“그러자 국방부가 2월 NLL 대비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어요. 북한이 NLL에서 도발할 경우 자주포, 구축함, 전투기 등 지·해·공 전력을 총동원해 초기에 제압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과거 이런 계획은 ‘위기관리’가 목표였는데 그때는 ‘승리’를 목표로 삼았어요. 이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북한에 알려졌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긴장이 고조된 겁니다.”(김종대 편집인)
계속 상승하던 긴장은 지난해 11월 NLL 충돌로 분출됐다. 북한 함정의 NLL 침범, 남한 함정의 경고사격, 북한의 응사로 이어졌다. 북한 총탄 10여발을 맞은 남한 함정은 도주하는 적을 추격해 총포탄 4000여발을 퍼부었고, 북한군 최소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이런 흐름이 고스란히 2010년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의 대척점에 북한 내부 요인설이 있다. 2008년 김정일이 병으로 쓰러졌고 2009년 후계자가 등장했는데, 안정적 권력 세습을 하려면 전쟁 분위기를 조성해 북한 주민들을 단속할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김진무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실장은 “2009년 1월 ‘대남 전면대결태세 진입’ 선언 이후 북한 내부 방송은 전쟁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게 눈에 보인다. 같은 해 8월 남북 정상회담 얘기까지 나올 만큼 유화 국면도 있었기 때문에 NLL 갈등과 충돌이 2010년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 의견도 비슷하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이 압축적으로 진행됐다. 주민 결속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외부와의 긴장이 필요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 시작된 남북관계의 긴장이 쌓여온 원인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북한 내부 요인이다.”
이처럼 분석은 달라도 이들이 동의하는 지점이 있었다. 남북 갈등이 미·중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갈등이 다시 남북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는 점.
뜨거운 바다, 서해
서해 문제는 2011년이 와도 가라앉지 않을 태세다. 이미 남북한 문제를 넘어 미국과 중국의 이슈로 발전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남북이 자꾸 서해에서 갈등을 만들면 미국과 중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국제 이슈가 된다. 우리는 한미동맹이 있으니 서해에서 연합훈련을 할 수밖에 없고, 이런 훈련에 중국은 ‘미국이 서해를 제2의 대만해협으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미·중 갈등을 만들어주는 꼴이다.”
서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강경하다.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서해는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산업벨트인 상하이, 칭다오, 톈진 등과 인접해 있다. 중국은 서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인식한다.
박창희 국방대 교수는 “아편전쟁 때 영국 함정이 톈진항으로 가면서 지나간 바다가 서해다. 중국이 볼 때 서해는 외부세력의 베이징 진입 루트인 것이다. 안보상 아주 중요한 곳이다”고 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서해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안해군 역할에 머물던 중국 해군은 최근 미 해군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중국의 2008년 국방백서는 ‘서방세력의 해안선 봉쇄 우려’를 명분 삼아 대양해군 육성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중국 국가해양국(SOA) 산하 해양발전전략연구소의 ‘2010년 중국 해양발전 보고서’에는 항공모함 건조계획도 담겨 있다.
중국 해군은 ‘적극적 근해 방어 전략’을 표방한다. 과거엔 ‘연안방어’였다. 박 교수는 “근해가 어디까지냐는 이견이 있다. 내가 보기에 중국은 대만-일본-필리핀 남사군도를 잇는 1도련(島沿)이 아니라 일본-괌-솔로몬제도-호주를 잇는 2도련을 근해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 중국 전투기는 2도련까지를 작전 범위로 한다”고 설명했다.
서해가 중국에 중요하다는 건 미국에도 그렇다는 뜻이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서해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눈에 드러나는 건 항공모함이지만 은밀하고 확실한 수단은 잠수함이다.
미국 핵잠수함은 중국 발해만까지 들어가 정보수집 활동을 벌인다, 발해만 입구에 중국이 설치한 방어막도 뚫고 오간다, 최근 서해에서 미국 잠수함 운항 횟수도 늘었다, 괌 미군기지에 정박 중인 잠수함 수가 줄었는데 이건 서해와 주변 해역에서 활동 중인 미 잠수함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국방 소식통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오간 지 꽤 오래 됐다.
미국 최신예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하와이호가 부산에 입항한 지 하루 만인 지난달 13일. 미군은 취재진에 잠수함 내부를 공개했다. 군사 전문지 디펜스타임스 김병기 편집위원은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내부가 공개된 건 처음이다. 중국에 ‘우리(미국)가 이런 첨단 잠수함까지 동원해 지켜보고 있다’고 알려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지난 7월에도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실탄 사격훈련을 하자 미군은 핵잠수함 미시간호, 오하이오호, 플로리다호를 부산 앞바다, 필리핀 수비크만, 인도양 디에고가르시아에서 거의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올리기도 했다.
중국도 가만있지 않는다. 헤리티지 재단이 지난 2월 발간한 ‘태평양 해역의 잠수함 무장 경쟁’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까지 태평양에만 공격용 잠수함을 78대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까지는 60대였다. 보고서는 “중국이 태평양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바꾸려고 잠수함을 대대적으로 늘리고 있다. 러시아보다 많다. 잠수함 건조 속도가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2011년 서해는
서해는 이미 국제적인 바다다. 그 안보 가치는 남북 관계를 초월한다. 열강들의 사활이 걸린 이곳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많은 제안이 나오고 있다.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등 서해 5도를 요새화하는 방안은 국방부가 실제로 검토 중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서해 5도는 분쟁지역인 만큼 평화와 안정을 위해 요새화하는 게 합당하다. (요새화)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요새화의 모범사례로는 대만 진먼다오(金門島)가 꼽힌다. 진먼다오는 대만의 부속 섬이지만 중국 본토와 1.8㎞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동서 20㎞, 남북 5∼10㎞인 섬 전체가 땅속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 지하의 민간 대피소 12곳은 전 주민 4만여명이 대피해 생활할 기반시설을 갖췄고, 화생방 방어시설과 지하 비행장까지 있다.
국방연구원 관계자는 “당연히 요새화해야 한다. 서해 5도가 너무 취약하다. 주민 없는 섬이 되지 않도록 잘 배려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반대 목소리도 높다. 김종대 편집인은 “서해 5도에 42개 대피시설을 신설하는 데 530억원이 든다. 요새화는 기본 생활을 다 지하화하는 것이다. 엄청난 돈이 든다. 비현실적이다”고 했다. 김용현 교수도 “군사적 긴장을 최소화하면서 요새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향후 남북관계를 풀려면 이런 식의 접근은 좋지 않다. 요새화보다 해군력, 공군력으로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방한계선 해역에 공동어로수역과 해상평화공원을 설치하고 인천∼해주 직항로와 해주공단 건설 등 협력을 통해 서해를 분쟁지대가 아닌 평화협력지대로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북한 해주항은 황해도에서 가장 큰 항구다. 입지조건이 좋지만 NLL 때문에 제 기능을 못한다. 공해로 나가려면 NLL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한다. 서해평화협력지대 방안은 이 불편을 덜어주는 것이어서 황해도 연안 개발에 목마른 북한도 솔깃해했다.
김용현 교수는 “NLL 이남 수역을 우리 영해로 인정받으면서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는 평화수역으로 바꾸는 방식이 옳다.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낮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무진 교수는 “당시 정상회담에선 군비감축 얘기가 없었다. 군비감축이 없는 평화지대 구상은 잘못된 것”이라며 반대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