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상처 받지 않기

입력 2010-12-23 17:55


내가 출석하는 경기도 양평 상심리교회에서 초등학생 대상 영어교실을 운영한 이후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하게 됐다. 중학생처럼 훌쩍 커버린 일곱 명의 남학생들이 오는 크리스마스이브 행사에서 영어로 캐럴을 부르기로 했다.

영어 가사는 다 외웠지만 율동을 곁들이려다 보니 연습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동안 손 따로 발 따로 노래 따로,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석이가 교실 구석으로 가더니 고개를 푹 파묻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달래 보아도 도리질을 하며 연습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석이는 5년 반 전만 해도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이어서 툭하면 이 아이 저 아이와 싸웠던 아이였다. 주의집중을 못했을 뿐 아니라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러나 꾸준한 돌봄 끝에 어느덧 온 교인이 인정할 정도로 유순하고 성실하며 책임감 있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과거의 행동으로 돌아갔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 선생님에게 들으니 춤 연습을 할 때 여섯 명의 친구들이 “너 때문에 틀렸잖아”라며 율동이 안 맞는 책임을 석이에게 돌렸다고 한다.

나는 예배가 끝난 후 석이를 따로 불렀다. “석아. 선생님은 보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너 때문에 틀렸다고 모두 손가락질했다면서. 맞아?” 석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석아. 선생님이 본 순간에는 일곱 명 모두 틀리기는 마찬가지였어. 너만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게 오해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 너, 아까 상처 받았지?” 했다. 석이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주 단호한 어조로 “누구나 상처를 받을 수 있어.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두 가지 선택의 길을 주셨어”라고 했다.

첫째는 계속 상처받으며 삐치고 속상해하며 사는 것이고, 둘째는 상처를 받지 않기로 작정하는 것이라고 해 줬다. 지적을 받았을 때 “아! 나 연습 더 해야 되겠네” 하고, 친구들에게 웃으며 “나 틀렸냐?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가르쳐 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식이다.

“석아, 어때? 혼자 삐쳐 있으니 연습도 못하고 친구들과도 못 놀잖니. 너 스스로 너를 왕따시킨 셈이야. 너는 ‘계속 상처받으며 사는 것’과 ‘씩씩하고 용감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쪽으로 할래? 네가 결정해라.”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던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표정에서 어떤 의지가 엿보였다. 나는 “하루아침에 그런 용기가 생기지는 않는단다. 자꾸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거든”이라고 덧붙였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 너처럼 잘 삐치고 혼자서 마음 아파한 일이 많았어. 어때? 지금 선생님 잘 삐치는 사람 같아?” 이 말에 석이는 큰 소리로 “아니요” 했다.

“선생님은 쉰 살이 되어서야 이걸 깨닫고 상처 안 받는 길을 선택했단다. 너는 몇 살이지?” “열세 살이요.” “그래, 넌 선생님보다 훨씬 빨리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그리고 아이를 가슴에 품어 안았다. “석아. 힘들어도 상처받지 않는 길을 선택하면 고맙겠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단다.” 아이는 내 품 안에서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