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자립 돕는 ‘거리의 천사들’… 밤마다 역 돌며 보살피고 주거·구직 자립 돕기 9년여

입력 2010-12-23 17:55


“수입은 예전의 절반이지만 만족감은 두 배입니다. 마음을 비웠으니까요. 거리 생활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죠.”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전’ 노숙인 A씨의 말이다. A씨는 잘 나가는 구두 디자이너였다. 새로 시작한 사업이 망해 거리로 나왔지만 ‘거리의 천사들’을 만나 다시 자활하기로 결심했다. A씨는 “억지로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한 걸음 뗄 때마다 뒤에서 붙잡아주는 거리의 천사들이 있어 빨리 자립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거리의 천사들’은 실직 노숙인들과 자원 봉사자들을 함께 일컫는 말입니다.” 노숙인 자립 지원사역을 하는 거리의 천사들은 1997년 IMF로 인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실직 노숙인들을 돌보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 해 12월 1일 총회상담소(소장 안기성 목사)를 주축으로 시작됐다.

거리의 천사들은 ‘달빛봉사’와 ‘별빛사랑’으로 구성된다. 달빛봉사에 참여하면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을지로3가역, 을지로입구역, 서울시청역, 종각역 지하도에서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준다. 자살, 동사(凍死)와 사고를 예방하며 쉼터와 진료소도 안내한다. 또 초기 실직 노숙인들이나 노동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는 임시주거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소개해준다. 달빛봉사자들은 봉사활동을 나가기 전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육을 받는다. 매일 밤 10∼20명의 봉사자들이 모인다. 지금까지 60여 단체, 약 300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다.

‘별빛사랑’이란 물질후원을 말한다. 연간 100명의 노숙인을 자립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별빛회원의 수는 3000명 정도. 지금까지 504명이 후원하고 있다. 별빛 회원들은 돈 외에도 옷, 생필품, 쌀, 약 등으로 지원한다.

‘거리의 천사들’ 사역 중 ‘한사랑 봉사단’은 특별하다. 한사랑 봉사단은 일하며 봉사하는 노숙인들의 모임이다. 윤건(54) 총무는 “2007년 7월에 굉장한 일이 일어났다”며 한사랑 봉사단의 출범계기를 설명했다. 거리의 천사들 봉사자들이 9년 동안 한결같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노숙인들이 “거리의 천사들은 믿을 수 있겠다”며 안 목사를 찾아와서는 “함께 일하고 싶으니 우리도 봉사하게 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윤 총무는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한사랑 봉사단은 9년 만에 맺은 신뢰의 열매”라고 설명했다. 한사랑 봉사단에서 노숙인들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활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된다.

2007년 이후 거리의 천사들의 자립 지원을 받은 180여명의 노숙인들 중 37%는 사회로 복귀했다. 노숙인 B씨도 그 중 한 명이다. B씨는 현재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완전한 자립을 꿈꾸고 있다. 회사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노숙인이었음을 숨기는 상황이지만 B씨는 정규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할 정도로 열심이다. “액수가 적든 많든 내가 일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게 좋다”는 B씨의 얼굴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거리의 천사들은 올해 7월 ‘빅이슈 코리아’를 창간했다. ‘빅이슈’는 1991년에 영국에서 시작된 노숙재활잡지이다. 자립을 원하는 노숙인은 거리에서 독자들과 직접 교류하며 빅이슈 잡지를 판다.

윤 총무는 “흔히 노숙인 하면 알코올 중독자에 게으르고 화 잘 내는 사람을 생각하기 쉬운데 성실하고 선한 분들이 정말 많다”며 노숙인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02-744-8291·st1004.net).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