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라이프] 성경과 진화론은 과연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것일까. 신앙이 좋을수록 과학은 멀어지는 걸까. 과학계의 발표가 있을 때마다 젊은 크리스천 지성들은 이 양극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가상 인물인 대학교 생물학과 새내기 주은혜(19·여)가 이 혼란의 한가운데를 뚫고들어갔다.
“새로운 원소인 독극물 비소를 이용해 살아가는 미생물이 발견돼 그간 지구생명체를 토대로 우주생명체의 존재를 바라보던 시선이 깨지게 됐다.”
은혜는 지난 3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이같은 발표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높인 나사의 발표는 그녀의 신앙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놨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은혜는 중학생 때 주일학교 담당전도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만약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성경은 모두 허구가 되는 거야.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구의 인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시거든.”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해 과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 전도사의 말은 은혜의 생각을 붙들었다. ‘외계인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어. 아니,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돼. 왜냐하면 성경은 진리니까.’
며칠을 고민하던 그녀는 오래된 수첩을 뒤졌다. 지금은 다른 교회 부목사로 간 그때의 전도사 전화번호를 찾았다. 이 ‘사태’를 따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응, 그건 말야. 너도 봤다시피 별거 아니지 않니? 우주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능성만 언급했을 뿐이잖아. 앞으로도 외계인이니 외계생명체 따위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테니 염려 붙들어 매렴.”
하지만 은혜의 궁금증과 고민은 더 커졌다.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이제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를 고민할 만큼 생각이 자라 있었다.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은혜는 스스로 답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선 인터넷을 뒤졌다. 외계생명체와 관련한 저명한 과학자와 신학자의 주장, 진화론-창조론 논쟁, 종교와 과학의 관계 등을 샅샅이 검색했다. 자료는 의외로 풍성했다. 강연 자료는 물론 블로그에 올라온 분석글, 서평 등을 보며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지구 생명체의 진화는 물론 우주의 진화를 믿는 진화론자들은 우주에도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는 우주생명체도 지구에서처럼 진화가 일어난다고 본다. 반면 창조론자들은 외계생명체의 존재가능성을 제로(0) 내지는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진화론자들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믿고, 창조론자들은 대체로 믿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사의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 부목사의 말처럼 아예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확실한 만큼 창조론은 허구이고, 나아가 성경도 허구임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선 은혜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갔다. 모태신앙으로 자라온 그녀는 신앙을 떠날 거라고는 한번도 상생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날 그녀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봤던 학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검색어에 넣어 책을 찾아나갔다. 이언 바버, 존 폴킹혼, 프랜시스 콜린스, 알리스터 맥그래스, 그리고 국내 학자로는 김용준, 김기석 등의 책들을 모조리 쌓아놨다.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 성경과 과학,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입장 등을 하나하나 메모해갔다. 공강 시간, 친구들과 약속을 미루고 책만 보는 데 1주일이 꼬박 걸렸다.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며 그녀는 마치 뜨거운 태양이 안개를 흩어버리듯 자신의 고민이 해결돼가는 것을 느꼈다.
우선 이들을 통해 그녀는 기독교와 과학이 반드시 대립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미국의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했던 콜린스의 말은 큰 도움이 됐다. “나는 과학과 신앙의 진리에는 놀라운 일치와 하모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도, 실험실에서도 발견된다. 하나님의 장엄함과 놀라운 피조물을 탐구하는 데 과학은 예배의 수단임에 분명하다.”
그녀를 고민에 빠뜨리게 했던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장시킬 거라는 기대로 바뀌었다. 특히 이언 바버의 다음과 같은 글을 통해서다. “복음의 말씀이 전우주적이라면 이제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이미지는 우주 규모의 창조와 구속에 걸맞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설계와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놀라운 과학의 발견을 통해 오히려 은혜와 감사를 느끼지만, 우연을 믿는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의 보잘것없음과 우주적 소외감만 느낄 뿐이다.”
물론 은혜는 이들 중엔 성경 말씀보다 과학을 더 중시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는 전공 공부 외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관련 학회나 세미나 등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교회 청년부 성경공부 모임에도 새롭게 참여하기로 했다. 성경과 과학이 공존하고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은혜는 지난 며칠간의 고민과 공부를 통해 지금까지 자신의 신앙생활이 지극히 ‘나 중심’ ‘지구 중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지금은 훨씬 넓은 신앙의 바다, 아니 신앙의 우주를 향한 여행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묘한 설레임도 솟아났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양민경 인턴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