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중국인 ‘강언니’ 평안 가운데 잘 살고 있답니다
입력 2010-12-22 18:47
오늘 날씨는 봄날처럼 화사하고 따스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거리가 꽁꽁 얼어붙어 종종걸음으로 조심스럽게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네 삶도 겨울날씨처럼 그렇게 혼돈과 어려움 속에 있기도 합니다.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마냥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하던 언니에게 영하 십 몇 도를 능가하는 겨울 동장군이 슬그머니 찾아 왔습니다.
언니의 외국인 등록증이 기한 만료로 연장을 해야 하는데, 언니를 보증해야 하는 일이어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았더라면 그리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텐데….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도와줄 사람을 애타게 찾아다니던 언니는 약국의자에 앉아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지요. 거칠어진 손과 언니의 기미가 잔뜩 낀 얼굴에는 겨울 들판의 황량한 바람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좋으냐고,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면서 제게 눈을 돌리는 언니가 어렵사리 말을 떼었습니다. 보증을 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면 듣는 순간, 머리가 약간 멍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답니다. 제게 이틀만 말미를 달라고 언니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무겁고 힘든 문제이기에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할 시간이 필요했지요.
하나님 아버지께는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으며 괜스레 겁이 나기도 하는 나약한 제 모습에 대하여 부끄러운 모습 있는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아뢰고 기도하는 가운데 제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게 주시고 있는 평안이 저를 따스하게 감싸주었고, 불편하고 불안했던 마음 길을 봄날처럼 초록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틀 뒤 언니를 만나 이런 제 마음을 이야기해 주었고 언니는 저를 꼭 껴안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언니에게 “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힘으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개인의 마음이었으면 결코 하지 못하였을 테니까요.
며칠 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언니와 함께 관공서를 다니면서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스친 사람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서 험하고 거친 일을 하면서 버는 돈을 고향으로 보내는 그 힘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제대로 난방이 되지 않아 추운 손을 비비면서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고 접수창구는 몇 개 되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이 참으로 길었습니다.
제가 가슴이 아프고 미안했던 것은 어느 누구도 이 열악한 상황에 대하여 지적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류를 받고 접수하는 창구 직원들은 너무나도 고압적인 자세라서 누구도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답니다. 반나절 이상을 기다려 서류를 접수시켰고, 며칠 뒤에 등록증이 나왔다며 저에게 보여주였습니다. 언니는 밝고 환한 미소를 다시 찾았습니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었지요.
언니의 삶에 연초록빛 봄이 가득해졌습니다. 남편과의 이혼 소송도 귀한 여러 이웃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잘 정리가 되었습니다. 머물렀던 쉼터에서 나와 식당 일을 하기 시작한 언니는 전 남편의 안부가 궁금하여 살던 집에 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였습니다. 이혼소송 끝에 언니와 합법적으로 이혼을 하고 혼자 살게 된 전 남편은 늘 술에 취해 하릴없이 방황했습니다. 그 모습을 자주 보았기에 언니의 발길을 말리고 싶었으나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다녀온 언니는 거의 폐인으로 살고 있는 전 남편을 보았고, 쓰레기장 같은 집안을 말끔히 청소하였노라면서 아저씨가 불쌍하다고 말꼬리를 흐립니다.
그 사람 덕분에 우리나라에 올 수 있었고 중국에 있는 아픈 엄마한테 치료비도 보낼 수 있었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만 있겠느냐고, 그래도 고마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언니의 이야기가 왜 그리 가슴에 와 닿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저씨는 간경화로 입원치료중이고 언니는 열심히 경기도 인근 식당에서 일하면서 평안 가운데 잘 살고 있습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