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이강렬] 심리전이 北 체제 바꿀 최적수단
입력 2010-12-22 18:45
“김정일이 지금 가장 겁내는 것은 북한군의 사기 저하와 민심 이반이다”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이래 가장 오래된 전술이 심리전이다. 고금에 가장 뛰어난 전략가로 알려진 손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병법’이라고 했다. 물질적 피해가 막심한 전쟁보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심리전이 중요한 이유다. 손자는 병법 군쟁(軍爭)편에서 ‘부대는 사기를, 장수는 심리를 빼앗으라(三軍可奪氣 將軍可奪心)’고 했다. 역사상 심리전의 백미는 ‘사면초가(四面楚歌)’다. 한(漢) 고조 유방에 쫓긴 초(楚)나라 항우 군대가 해하에서 한밤중에 한나라 군사들이 부르는 초나라 노래를 듣고 심리적 동요를 일으켜 지리멸렬하는 가운데 항우는 자결을 했다.
남북 간에는 서해 5도를 둘러싼 물리적 긴장대결뿐 아니라 전선 없는 심리전이 한창이다.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 군은 본격적으로 대북 전단을 살포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한 AM 라디오 방송과 휴전선에서 인민군을 대상으로 한 확성기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정부가 오불관언하는 동안 대북 민간단체들이 열심히 북한에 전단을 살포해 왔다. 반면 북한은 인터넷을 통해 집요하게 남측 젊은 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우리는 요란하게 심리전을 전개하는 반면 북한은 도둑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우리 사회를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남측이 대북심리전 방송과 반공화국 삐라(전단) 살포 행위를 중지시키지 않으면 방송수단과 삐라 살포 지점에 대한 우리 군대의 물리적 타격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등 북한은 우리 측 대북 심리전에 극도의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두렵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가장 겁내는 것은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한 통치자금 고갈이나 외교적 고립보다 북한군의 사기 저하와 민심 이반이다. 우리는 바로 북한의 이 아킬레스건을 노려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대북 심리전에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첫째, 대북 심리전은 전술면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네방네 떠들면서 하고 있다. 심리전은 눈 내린 겨울, 토끼나 노루몰이 하듯 북치고 꽹과리 치면서 요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가랑비에 옷을 젖게 만들고 보일 듯 말 듯 쥐구멍을 내서 저수지 둑을 터트려야 한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등이 내년 1월 8일 김정은 생일에 맞춰 대북전단 10만장을 북으로 날린다고 한다. 이것은 정치적 쇼일 뿐이다. 차라리 대북 심리전 지원 내용을 담고 있는 북한 인권법 통과에 진력하는 것이 옳다.
둘째, 대북 심리전은 정부 주도 아래 국정원과 군의 대북심리 전문가들이 이끌어야 하며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미 의회는 북한인권법에서 북한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보급하고 라디오 자유아시아(RFA)와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포함 대북방송을 하루 12시간까지 늘리도록 했다. 우리도 정부와 국회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휴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도 효과적이기는 하나 라디오와 TV 등 방송매체를 통한 심리전이 매우 효과적인 것이 입증됐다. 우리가 준비 중인 AM 라디오 방송을 통한 대북 심리전을 즉각 재개하고 북한 주민에게 대량의 라디오를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더불어 중단된 대북한 TV 심리전도 재개해야 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으면 평양 거주 주민들 상당수가 중국으로부터 컨버터를 구해 남한의 TV를 시청했고 이를 보고 남한 실상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넷째, 우리 내부 단속도 철저히 해야 한다. 올해 8월말 현재 폐쇄된 친북 카페가 45개, 차단된 해외 친북 사이트가 29개나 된다. 삭제한 친북 게시물도 5만6814개나 된다. 북한은 인터넷을 통해 우리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치밀한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난 십 수 년 동안 햇볕정책을 펴면서 북한의 심리전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 사실이다. 정계, 학계, 언론계 등에 진보를 넘어 종북친북주의자들이 활개를 치는 것도 북의 대남 심리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강렬 편집국 국장기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