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엉터리 ‘법관 평가’ 실명 공개 파문

입력 2010-12-22 21:51

대한변호사협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내년 재임용 대상 법관 180명의 적합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뒤 부적격 법관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변협은 그러나 조사대상이 아닌 법관들을 평가대상에 대거 포함시킨 데다 설문에 응한 변호사 수도 극소수에 불과해 부실조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각에선 변협이 법원 견제에만 의욕이 앞선 나머지 엉터리 조사를 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변협은 22일 법관 180명의 연임 적합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 28명의 법관이 부적합 표를 받았다고 밝혔다. 변협이 재임용 대상 법관의 적합 여부에 대한 평가를 실시한 것은 처음이다.

김평우 대한변협 회장은 “판사가 10년간 일하고 재임용을 받는다면 그동안 사법 서비스에 대해 국민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데 최근 10년간 재임용에 탈락한 판사가 한 명도 없었다”면서 “판사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민주적 프로세스”라고 밝혔다. 최근 ‘막말 판사’ 사례도 잇따르는 상황에서 법관도 사회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협이 해당 법관의 실명과 가부(可否) 표수를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은 해당 판사에 대한 명예훼손 소지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또 재판에 참여하는 변호사가 판사의 재임용 관련 의견 제시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법관의 독립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조사대상이 된 법관 180명 중 과반수인 법관들은 내년 재임용 대상이 아니어서 설문조사 자체가 엉터리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원 관계자는 “연수원 30기 판사들은 예비판사 2년을 거쳐 2003년 정식 임용돼 2013년에 재임용 대상이 된다”며 “변협이 조사대상을 잘못 선정했다”고 말했다. 조사대상이 된 연수원 30기 법관들은 97명이나 됐다.

조사에 응한 변협 회원은 155명으로 전체 회원 수 1만281명을 감안하면 1.5%에 불과해 조사결과의 객관성도 의문시된다. 판사에 대한 변호사의 평가가 단순한 인기투표가 아니라 판결 실적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이뤄졌느냐는 비판도 예상된다. 가장 많은 ‘부적합’ 표를 받은 서울고등법원 정모 판사는 부적합 표를 14표나 받았지만 ‘적합’ 표도 30표나 얻어 평가가 극과 극을 달렸다.

법원 관계자는 “변호사의 요청을 법정에서 법관이 들어주지 않는다고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린다면 법관과 재판의 독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공식 대응은 하지 않았다. 변협은 조사내용이 문제가 되자 2∼3시간 만에 조사결과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뒤 언론에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