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서울’ 추진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 함께 걸어 보실래요? ‘서울 올레길’
입력 2010-12-22 18:49
누구에게나 역사적인 그날이 있다. 잊을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의 순간 말이다. 50년 전 그녀의 품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스며들었다. 서울 정동 이화여중 노천강당에서다. 14세 소녀는 그 아름다운 선율과 노랫말에 매료됐다. 난생 처음 배운 노래였다. 수업이 끝나고 아현동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그 멜로디는 입안에서 맴돌았다. 찬송가 ‘참 아름다워라’(새찬송가 478)였다. 콧소리가 절로 나왔다.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저 맑은 새소리’ ‘아침 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등 가사가 가슴에 박혔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녀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외롭게 지내는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동네에서는 ‘꼬마 사학자’로 통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학교 교사들도 그녀의 영특한 말솜씨에 놀랐다. 평범한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소녀는 46년 만에 이화여대 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임기를 마친 지난 8월에는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그녀의 이름은 이배용. 12월 셋째 주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정문 앞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올해 63세인 이 위원장은 순흥 안씨 종갓집 맏며느리로 남편 안기정씨 사이에 아들 형제를 두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만남이다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 이원장이라면 이 중요한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남입니다. 탁월한 업무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리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만남의 기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위원장은 궁예나 연산군은 망했지만 왕건과 세종은 흥한 이유를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 포용이 부족한 궁예나 연산군은 뛰어난 능력이 있었지만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무너졌다. 왕건과 세종은 성경 말씀과 같이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창대했다(욥 8:7).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품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만남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이화여중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 내 인생의 축복이었습니다. 가장 수지맞은 일이었습니다. 그 만남만 제대로 가지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절절한 대면이 있는 사람은 겸손과 은혜를 알게 된다. 신앙 안에서 품격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품격 있는 겸손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리더와 팔로워 간에 선순환적 관계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품격 있는 사람이 도처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격 있는 사람을 통해 품격 있는 사회가 이뤄진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이 위원장은 한국 최초 여성 교육의 발상지인 이화학당의 표지석 앞에서 정동제일교회를 바라보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 땅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요즘 큰일을 맡으면서 더욱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걸음을 인도해 달라고요.”
리더는 포용력과 사회적 통합력 갖춰야
이 위원장은 세종대왕을 한국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로 평가했다. 역사학자인 그녀는 세종실록을 10년 이상 깊이 읽었다. 실록을 읽으면서 세종의 리더십 핵심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깊은 사랑임을 발견했다. 재위 32년 동안 세종은 사랑의 정치를 펼쳤다.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 정치를 전개해 나간 것이다. 그의 치적 가운데 하나인 노비 출산휴가도 인간애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이 위원장은 이 시대의 리더들은 세종의 인간 사랑에 기초한 조화와 상생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은 설득의 리더십을 몸으로 보였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을 솔선수범함으로써 신뢰의 정치를 이뤄냈습니다. 그는 참으로 포용과 통합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의 빛나는 리더십을 배워야 합니다.”
세종의 근면과 성실,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정신은 한글 창제라는 걸출한 결과물을 낳았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한글은 소통의 문자이자 배려의 문자다. 그것은 또한 사랑의 문자다.
“참으로 세종은 연구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리더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자랑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또 다른 세종이 나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스토리텔링으로 서울 올레길 만든다
이 위원장은 요즘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한 역사문화가 살아 숨쉬는 서울’(올레길)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조선 건국 이후 600여년간 한반도의 심장부로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수도 서울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미래 지향적인 아름다운 도시로 가꿔나갈 계획이다.
“서울의 길을 따라가 보면 반만년 역사의 교훈과 문화적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4대문과 성곽은 우리 근현대사의 영욕을 함께한 유적으로 어떤 세계문화 유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문화재입니다. 또한 서울만큼 각종 종교가 공존하며 발전한 곳은 별로 찾기 어렵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이 아름다운 도시 서울에 산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녀는 서울 곳곳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치는 길을 조성할 방침이다. 한국 감리교 최초의 교회인 정동제일교회를 비롯해 새문안교회, 감신대, 이화여대, 연세대와 세브란스병원을 지나 양화진 외국인묘역까지 걷는 ‘기독교 올레길’ 코스도 만들 계획이다. ‘천주교 올레길’을 위해 명동의 명동성당, 중림동 약현성당, 순교 사적지로 기념 성당과 기념관이 건립돼 있는 합정동의 절두산 등을 이을 생각이다. 궁궐과 종묘, 4대문 등을 도는 ‘유교 올레길’도 만들 수 있다. ‘불교 올레길’을 위해서는 신라 때 창건된 봉원동의 봉원사, 견지동에 있는 조계사, 숭인동의 청룡사, 삼성동 봉은사 등을 이으면 된다.
이 위원장은 헨리 아펜젤러와 호레이스 언더우드, 메리 스크랜턴 등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들은 캄캄한 조선 땅에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고난의 민중들에게 소망의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입니다. 우리 또한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자신보다는 남을 위한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지는 그날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높아지는 날입니다. 저 또한 이런 생각으로 열심히 일할 계획입니다.”
이 위원장은 이 시대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기 원한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성경 말씀을 전해 주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글 윤중식 기자·사진 이동희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