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음종제작주식회사 조병헌 대표 “시끄럽다구요? 종소리는 음악”

입력 2010-12-22 18:09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던 캐럴 ‘탄일종’의 가사다. 노래의 가사는 노래를 접하는 모든 이의 눈앞에 익숙한 그림을 펼쳐 보인다.

이른 아침과 캄캄한 밤, 교회 종이 울린다. 은은하고 차분한 종소리는 공기를 뚫고 산속으로, 바다로 뻗어나간다. 산속 오막에 살던 아낙네와 바닷가 어부는 교회가 전하는 친절한 종소리를 듣고 몇 시쯤 됐는지 가늠한다. 종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무작정 뛰어가던 어린이들의 깔깔대는 웃음도 눈에 선하다. 교회 종소리를 들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포근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라져 가는 종

얼마 전이었다. 출석하는 교회 소년부 아이들이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탄일종’을 따라 부르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냐고 묻자 “탄일종이 뭐예요?”라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종 몰라?” “네, 한번도 본 적 없어요.” 지금의 아이들에게 종과 종소리는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 9월 취재차 경북 안동시 일직면 일직교회를 방문했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곳의 아이들은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 선생이 시간 맞춰 정성스럽게 치는 종소리를 들으며 꿈과 추억을 키워갔을 게다. 종을 보기는커녕 종소리를 들을 기회조차 빼앗긴 지금 아이들이 눈을 감고 크리스마스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건 과연 무엇일까.

언제부턴가 종소리를 들을 기회가 사라졌다. 가장 최근에 종소리를 들은 게 언젠지 기억을 되살려 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군사정권 때 소음진동규제법이 만들어진 뒤부터 종소리가 점차 사라졌습니다. 종소리는 규제 대상이 아닌데…. 소음이 아니라 음악이니까요.” 성음종제작주식회사 조병헌 대표는 안타까워했다.

그가 기억하는 교회 종소리의 힘은 매우 컸다. “종을 만들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특히 가끔 목사님들이 연락을 주실 때는 힘이 났지요. 사람들이 교회 종소리를 듣고 교회에 오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믿게 됐다는 거예요.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참 기뻤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종 수요는 급격하게 줄었다. 성음종제작주식회사에서는 교회와 학교를 합쳐 1년에 평균 10∼12개의 종을 만든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도 채 안된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교회가 너무 지레 겁을 먹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교회 종소리에 대해 사람들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거죠. 종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교회가 나서서 그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야 해요.”

고통의 산물

종은 99.9% 청동으로 제조된다. 잘 부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청동이 쓰인다. 종의 제작에는 시종 정교함이 요구된다. 도안을 하고 난 뒤 초를 녹여 만들고자 하는 크기의 모형 종을 만든다. 모래를 이용해 거푸집을 만들고 초로 만든 종 모형을 빼낸다. 3번에 걸쳐 거푸집을 건조시키고 땅에 묻은 뒤 청동쇳물을 천천히 넣는다. 상온에서 24시간 자연 냉각을 한 뒤 흙을 털어낸다. 표면을 닦고 광을 내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서 종의 형틀을 조립한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렇게 종이 완성되면 추를 달고 울려 소리를 확인한다. 테스트를 통과한 종은 트럭에 실려 운반된다.

종 제작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고려할 조건도 상당히 많다. 습도, 종의 수분 함량, 주조할 때 불의 온도 등 모든 조건이 맞았을 때 만들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이 탄생할 수 있다. 매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날씨나 기후도 중요하다. 평균 3개월의 제작기간이 소요되는데 습도가 많은 시기에는 제작이 불가능하다. 제작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오랜 기간을 거쳐 완성했다하더라도 종은 버려지는 운명을 맞는다. 조 대표는 “온 정성을 다해 만든 종의 품질이 떨어져 깨버려야 할 때 살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낍니다. 하지만 최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종은 존재 가치가 없어요”라고 잘라 말했다.

종 제작에 필요한 인력은 갈수록 모자란다. 제작과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종 제작 기법을 배우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3D도 이런 3D가 없죠. 섭씨 1500도에 달하는 열기 속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고 품질의 종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종에 미쳤다”고 자신을 표현하는 조 대표도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을 감추기 쉽지 않은 듯했다.

기독교 문화의 상징으로

조 대표는 종 제작자로서 희망이 있어 좌절하지 않는다고 했다. “종으로 낼 수 있는 음은 총 78개입니다. 현재 종이 낼 수 있는 음은 11개에 불과해요. 11개 음을 가지고도 상당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잖아요. 78개의 음을 다 낼 수 있다면 종소리는 예술에 다다를 겁니다. 음을 하나씩 늘려갈 때마다 행복합니다.”

그는 1992년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 업무차 독일을 방문했다가 새벽 교회 종소리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독일, 네덜란드, 영국, 체코에서 종 제작 기술을 배웠다. 이듬해부터 종을 수입해 판매했고 199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종을 만들기 시작했다. 네 나라의 종 제작 기술을 토대로 독자 기술도 개발했다.

“유럽 국가 대부분의 교회에는 종이 있습니다. 종소리가 얼마나 장엄한지 모릅니다. 노트르담 성당 같은 경우 종소리 자체가 하나의 관광 상품이기도 하죠. 선교의 도구이기도 하고요. 참 부럽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교회 종소리를 관광 상품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의 종보다 더 많은 음, 더 아름다운 음색을 내는 종을 만들고 있습니다. 목회자들부터 교회 종소리의 힘을 알았으면 해요. 기독교 신자이든 아니든 ‘종은 아름다운 기독교 문화’라고 인정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