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맥쿼리그룹 존 워커 회장 “아기 반달곰 동화 계속 써야죠”
입력 2010-12-22 18:10
‘금액이 적어 미안합니다.’ 호주 금융회사 맥쿼리그룹 한국법인 회장인 존 워커(55)씨가 지난달 동물사랑실천협회(CARE)에 250만원을 기부하면서 남긴 메모다. 박소연 CARE 대표는 ‘우리로서는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돈입니다’라며 워커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워커씨는 이달 중 회사의 매칭 도네이션(개인이 기부한 만큼 회사에서 기부)으로 250만원을 협회에 내기로 약속했다.
워커씨는 동물애호가다. 집에선 유기견을 키우고, 쉬는 날엔 아내와 동물보호 캠페인을 벌이며 틈틈이 반달곰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동화를 써내려간다. 14일 서울 소공동 맥쿼리그룹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CARE 얘기에 “전 동물 사랑하는 분들을 어드마이어(존경)해요”라며 반색했다.
먼저 책 이야기. 워커씨는 최근 ‘우라의 꿈(Ura’s Dream)’을 펴냈다. 단군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동화책이다. 우라는 곰의 학명 ‘우르서스(Ursus)’에서 따온 이름. 장난기 많고 모험심 가득한 아기 반달곰. 날고 싶지만 날 수 없어 꿈에서나마 까치처럼 날아보는 반달곰이다. 우라를 워커씨는 “항상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즐거운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뜩이나 심각한 인생을 진지하게 접근하고 싶진 않았다. 동물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소중한지 그 정도의 메시지만 전달해도 대성공”이라고 덧붙였다. 워커씨가 책을 출간하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아기 반달곰 우라의 모험’이 그를 동화작가로 ‘등단’시킨 첫 작품이다. 책 판매 수익금 전액은 동물단체와 환경단체 등에 기부된다.
그는 유기견도 키우고 있다. 홍콩 자택에 세 마리, 한국 성북동 자택에 다섯 마리 총 여덟 마리의 버려진 개들을 자녀처럼 키운다. 출장이 잦아 애견 헬퍼의 도움을 받는다. 헬퍼들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사람이다. 그가 아이폰으로 애견 사진을 보여줬다. “얘는 웅삼이, 누렁이, 그리고 얘는 잉끼예요. 잉끼. 블랙 잉크있죠? 내가 이름 지었어요.” 털이 검은 푸들에게 붙여준 이름을 한참 설명했다. 유기견을 키운 지도 벌써 6년째. 동물을 유독 사랑하는 한국인 아내를 만나고부터 그의 삶은 참 많이 변했다.
“사실 아내를 만나기 전엔 동물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었어요. 물론 좋아했지만요.” 항공사 승무원인 아내는 동물을 끔찍이 사랑했다. 사육장에 갇힌 곰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길 잃은 강아지를 보면 참지 못하고 거두어 들였다. 그런 아내를 사랑하면서 그도 동물과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 아내와 함께 동물보호 운동가로 활동하게 됐다.
“3주 전에도 아내와 이태원에서 곰사육 반대 모금운동을 했어요.” 워커씨의 아내는 반달곰 보호 운동가로 동물애호가들 사이에선 유명한 인사. ‘지나 문(Moon)’으로 불리는 손경희(52)씨는 ‘문베어(www.moonbears.org)’라는 글로벌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곰 보호 운동을 펼치고 있다. 손씨는 올해 세계동물의 날(10월 4일) 홍보 대사로도 뽑혔다. 그런 손씨를 묵묵히 지원하는 이가 남편 워커씨다.
2000년 직원 4명과 함께 한국에 사무실을 열고 프로젝트 파이낸싱부터 시작했던 존 워커 회장. 11년이 지난 지금 직원은 300여명으로 늘어났고 인수·합병(M&A), 자산금융시장, 기업금융, 사회간접자본파이낸싱, 헤지거래, 주식파생상품개발 등 사업 분야도 12개로 확대됐다. 워커 회장은 자본시장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금융위원회 위원장상을 받았고, 외국인 최초로 한국증권업협회 공익이사로도 선임됐다. 대한민국 영주권도 받았다. 서울시 명예시민이란 타이틀도 있다.
“심정적으론 한국인이죠. 한국은 제게 관대하고, 저를 사랑해주죠. 한국 오면서 제 삶이 바뀌었어요.”
교수(호주 뉴잉글랜드대)에서 공직자(연방정부 차관), 민간 투자자(맥쿼리그룹 한국법인장)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워커씨에게 다음 여정을 물었다.
“동물보호단체나 비정부기구(NGO)의 재정컨설팅을 해주고 싶어요. 은퇴 후의 일이겠지만요. 동화도 계속 쓰겠지요? 책이 많이 팔려서 더 많이 기부하면 좋겠어요. 기도해주세요.”
글 이경선 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