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뒹굴고 달리고 ‘청계산숲학교’ 김정실 교사… 장난감 없어도 신나는 숲유치원
입력 2010-12-22 17:46
“뾰롱 뾰롱 뾰로롱/ 산새꾸러기들 재롱을 노래하고// 돌담 살포시/ 포옹한 담쟁이/ 얼굴 붉어졌구나// 조롱조롱 풋 열매/ 이슬 머금은/ 초록 융단 딛고 서서// 뜰 앞/ 소국 닮은 꿈/ 송이송이 그려 간다”
시 ‘꿈이 영글어 가는 집’이다. 전도사이자 시인인 유치원 보육교사 김정실(49·여)씨가 아이들이 뛰어노는 숲을 노래한 시다. 이 숲은 김 교사의 직장이다. 그는 요즘 유치원생 부모들 사이에서 화제인 ‘숲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서울 원지동 ‘청계산숲학교’(cafe.naver.com/forestplayschool·원장 오수숙)에 근무하는 김 교사 말대로라면 가르친다기보다 같이 논다.
숲학교는 숲이 유치원인 곳이다. 숲 속에 유치원이 있는 게 아니다. 숲 자체가 유치원이다. 교실 건물이 없다. 숲학교에는 사무실 겸 식당용의 나무집과 폭우 등을 피하기 위한 돔 구조물만 있다. 숲이 교실이다. 숲이 교사며, 장난감이다. 교구재이기도 하다. 교사도 가르치지 않는다. 함께 놀거나 생활한다. 놀면서 과제를 풀어간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블록 장난감, 고무 찰흙 등도 없다. 대신 나무, 돌, 곤충, 잔디, 비, 눈 등이 있다. 나무와 돌을 만지고 잔디에 뒹굴면서 세상을 배워간다.
국내에는 3년 전에 들어왔다. 올 8월 현재 392개 보육기관이 숲학교를 표방하고 있다.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숲학교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아 5700여명이 참여하는 등 호응도 높다. 특히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이를 따를 때 영육이 건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난 14일 오후 2시. 이날 낮 최고 기온은 영하권에 머물렀다. 청계산 자락에 위치, 산바람까지 더해 체감온도는 훨씬 더 떨어졌다. 그런데도 5세 전후 아이들 8명은 바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장갑도 끼지 않았다. 점퍼 앞지퍼까지 열어젖혔다.
아이들은 기차놀이, 술래잡기를 하고, 긴 통나무에 올라 장난쳤으며 실제 나무에 오르기도 했다. 잔디에 누워 웃고 떠들었다. 몇몇은 추위를 피해 햇볕이 잘 드는 바위에 앉거나 누워 있었다. 김 교사는 “다른 유치원으로 치면 지금이 수업시간”이라고 말했다. “나무가 높아서 못 올라가니까 다른 나뭇가지를 괴고 올라가는 것 보셨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터득한 거죠.”
숲학교의 겨울철 중점지도 프로그램은 모두 놀이다. 꼬리잡기 보물찾기 눈썰매타기 연날리기 바람개비놀이 구슬치기 등으로 구성됐다. 텃밭 만들기 보리 관찰하기 감자 수확하기 허수아비 만들기 김장하기 개울물놀이 곤충관찰 등 월별, 놀이별 가이드라인도 대개 ‘노는 것’에 가깝다. 교사들은 이 계획에 맞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아이들의 개성을 인정하고 아이들의 반응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아이들은 올해도 김장을 직접 했다. 유치원 한쪽에는 김장독 20여개가 줄 지어 땅속에 묻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교회 가서 강대상 안에서 뒹굴고 친구들이랑 떠들고 장난치는 것 같지만 ‘오늘 교회에서 뭐했니?’라고 물으면 설교 내용, 찬송가 등을 다 기억하잖아요. 아이들은 놀면서도 모든 정보를 받아들여요.”
김 교사는 오해할세라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주자는 게 아니고요. 다양한 지각 통로를 개발해주자는 거예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고 체험하도록 이들의 놀이터인 숲에서 놀게 하자는 거예요.”
숲이 가르치는 가장 기초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논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논다. 추우면 옷을 더 입고 밖으로 향한다.
숲은 또 건강을 선사한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면역력이 높다. 감기에 걸리긴 하지만 빨리 낫는다. 흙구덩이 늪 잔디밭은 오히려 인체에 유익한 박테리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병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진다고 김 교사는 설명했다.
숲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존감도 높다. 어려서부터 대자연을 경험하며 저마다 그 속에서 주인공이 된다.
김 교사는 두 아이의 엄마다. 그는 자녀를 키우면서 자존감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25세 아들보다 자존감이 더 높은 21세 딸이 상대적으로 독립심이 강하고 진취적”이라고 말했다. “딸은 수학을 46점 맞고도 “엄마 46점 받았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아이에요. 공부는 아들이 더 잘했어요. 하지만 지금 보면 딸이 더 제 몫을 하고 있어요.”
개척교회 사모이기도 한 김 교사는 총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이전에 출석하던 교회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시작해 한때는 어린이집을 맡아 직접 운영도 했다. 영성, 유아교육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것이다. 또 태교학회 활동도 했다. 이곳에서 오 원장을 만났고 숲유치원 교사로 스카우트됐다. 오 원장은 “태교학회에서 같이 활동해 김 교사의 신앙과 성품, 교육열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기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숲은 김 교사의 감성도 깨웠다. 숲의 새소리 물소리 등은 그를 추억 속으로 안내했다. 나무로 빼곡한 산이 침대로 느껴졌다. 그곳에 눕고 싶었다. 그 감성은 시를 쓰게 했다. 김 교사는 지난여름 계간 ‘사상과 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볏짚에서 숨바꼭질하고 개울가에서 미역 감고 놀았어요. 그러면서 시골 정서가 몸에 밴 것 같아요. 도시에서 자란 우리 아들딸은 제가 ‘단풍 좋다, 설경 멋있다’고 해도 시큰둥해요. 콘크리트 건물 속에 살면서 감수성이 개발되지 못한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김 교사는 “건물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오는 것이 숲학교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면서 “자연과 상호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 자연이에요.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느끼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유아기에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요?”
글 전병선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