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프롤로그] ‘미아리 서신’과 독자 편지
입력 2010-12-22 18:08
지난 토요일 밤 ‘미아리서신’의 필자 이미선 약사의 모친께서 별세하여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서울 미아사거리 한 장례식장이었고, 필자의 약국과도 가까웠습니다. 이 약사의 교회 식구와 약국 앞 집창촌 이웃 등이 뒤섞여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미아리고개를 넘었습니다. 지하철 길음역에서 미아사거리 가는 길은 집창촌 입구인 데다 개발이 더뎌 마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장면처럼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킵니다. 70∼80년대 주간지 컬러 표지와 갱지 속지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더구나 제게는 중학교 시절 등굣길이어서 세월이 지났어도 눈에 익습니다. 사대문 안에 살던 저는 소위 ‘뺑뺑이’로 남대문중학교에 배정돼서 당연히 남대문(숭례문)으로 갔다가 뒤늦게 이 학교가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걸 알고 울다시피 미아리고개를 넘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무튼 그 시절, 이 지역은 남자들에게 참 미묘한 공간이었습니다.
한데 이날 집창촌 여성의 인생 상담자이자 전도인 역할까지 하는 이 약사가 상복을 입고 예를 다해 그들의 조문을 받습니다. 그녀들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땐 일상이었을 텐데 이날 달라 보였던 것은 ‘앎의 무지’입니다.
다음 날 저는 평택의 한 독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난 10월 21일자 ‘미아리서신’의 ‘위태로운 개미취 꽃송이를 닮았던 집창촌 그녀’라는 글을 본 독자께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녀’는 고아로 태어나 철없던 시절 예쁜 딸을 낳고 남자에게 버림받아 집창촌에 들어왔고, 언젠가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고 싶다는 내용을 보신 것이지요. 하지만 화재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독자의 교회 목사님께서는 그 글을 전 교인 앞에서 읽어주시고 그녀와 그녀의 딸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했다고 적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울음바다가 됐답니다. 용서와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편지 글을 마무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추신’: 국민일보가 더욱 많은 것들을 찾아 은혜의 신문이 될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