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은 무엇인가
입력 2010-12-22 20:41
(24) 성경 원어의 비밀
‘성경 원어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성경 원어(히브리어, 헬라어)는 망원경처럼 멀리 있는 것은 가까이 보이게 하고, 현미경처럼 가까이 있는 것은 더 자세히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 원어가 성경에 나오는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밝혀줌으로써 성경 해석에 필수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 원어는 모든 난제들을 해결해주고 깊은 비밀까지도 깨닫게 해주는 만능 열쇠나 마법상자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성경이 기록된 ‘그 시대, 그 장소’로 되돌아가서 성경 기자와 함께 호흡하고 대화하듯이 영감 된 말씀을 경건하게 읽어야 한다.
1.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식민지 국가였다. 그런데 그때 유대인들이 가장 수치스럽고 끔찍하게 느끼는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앙가류오’라는 단어인데, ‘억지로 가게 하다, 강제로 시키다’는 뜻이 있다. 로마 군인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아무에게든지 억지로 무거운 짐을 지우거나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언제든지 강제로 시킬 수 있었다. 길을 지나가던 구레네 시몬이 엉겁결에 십자가를 지고 간 것도 이 로마법에 의한 것이었다(마 27:3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리를 가자고 하면(앙가류오), 십리까지도 동행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41).
2. 우리말 성경에서 ‘유앙겔리온’은 ‘복음’ ‘좋은 소식’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 단어는 그 역사적 배경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충격적인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주전 490년, 아테네 북동쪽에 있는 마라톤 평지에서는 헬라(그리스)와 파사(페르시아) 사이에 나라의 운명을 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예상과 달리 헬라군이 큰 승리를 거두자 한 무명의 병사가 무려 36.75㎞(마라톤 코스보다 짧음)를 달려와서 “우리는 이겼다”고 외치고는 쓰러져 죽었다. 바로 그 소식이 ‘유앙겔리온’, 즉 기쁜 소식이다. 성경 기자는 이 단어를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와 더불어 싸워 승리하신 기쁜 소식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고 있다(막 1:1, 롬 1:16).
3. 헬라어 ‘파루시아’는 사람이 임재하거나 물건이 도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는 ‘재림’을 뜻하는 전문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파피루스 자료나 고대 헬라 문헌에 보면 이 단어는 황제나 왕, 총독과 같이 최고 지위에 있는 고관이나 유명인사가 어떤 마을에 도착하는 것을 나타낼 때 쓰이고 있다. 왕의 파루시아 날짜가 정해지면 먼저 세금이나 곡식들을 거두어 그 돈으로 도로를 만들거나 건물들을 지었다. 낮은 골짜기는 메우고 굽은 것은 곧게 하며 험한 길은 평탄케 하였다(눅 3:5).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다시 파루시아(재림)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를 맞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절망의 골짜기를 메우고 죄악의 굽은 것을 곧게 하며 교만의 험한 길을 평탄케 해야 한다.
4. 아마도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많이 쓰이는 단어가 있다면 ‘카리스’이며, ‘은혜’ ‘기쁨’ ‘매력’ ‘호의’ ‘감사’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 단어는 원래 매력적인 것, 아름다운 사람을 의미했는데, 누구든지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기쁨과 호의와 감사의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카리스’(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런 마음을 지니게 된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고 싶고, 늘 울어도 다 갚을 수 없어 눈물 흘리며 숨질 때까지 늘 찬송한다. 그렇다. 오직 은혜(Sola Gratia)다!
고영민 총장 <백석문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