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미끼상품
입력 2010-12-21 17:53
세상에는 세 가지 대표적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노인의 “빨리 죽어야지”, 노처녀의 “시집 안 갈거야”, 그리고 장사꾼의 “밑지고 판다”라는 것이란다.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자금제도 홍보 만화에 “돈이 없어 공부 못 했어”까지 네 가지라고 소개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런데 “밑지고 판다”는 거짓말은 좀 바뀌어야 할 듯하다. 밑지고 파는 게 뻔한데 “절대로 밑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장사꾼도 있으니 말이다. 일주일 만에 판매를 중단하긴 했지만 롯데마트의 5000원짜리 ‘통큰치킨’은 우리 사회를 벌집 쑤신 듯 뒤흔들어 놓았다. 롯데마트는 정상적인 상행위라고 강변했지만 치킨업계는 생닭 값 4100원에 기름과 밀가루, 인건비, 임차료 등을 감안하면 밑지는 장사라고 다그쳤다.
롯데마트가 손해를 감수하며 치킨을 판매했다면 이유는 미끼상품으로 쓰려는 것이다. 즉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수단이다. 통큰치킨이 아니더라도 대형마트들은 이미 그런 전략을 쓰고 있다. 집으로 배달되는 마트 전단지에는 라면과 김치 등 시중가보다 파격적으로 싼 미끼상품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소비자들은 여기에 넘어가 마트를 찾고, 간 김에 이것저것 사서 마트를 쌀 찌운다. 정작 통이 큰 것은 치킨이 아니라 마트의 영업전략이다.
미끼는 마트에만 있는 게 아니라 도처에 깔려 있다.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좋은 조건의 가짜 매물이 올라 있고, 초저금리라는 유혹에 은행을 찾지만 그런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싼 맛에 1만원짜리 단풍관광을 갔다가는 사슴목장에 들러 50만원이 넘는 녹용을 들고 집에 돌아오기 십상이다. 소설가 김현경은 심리여행 에세이집 ‘사람풍경’에서 바람둥이 남자의 특징이 “여성에게 끊임없이 칭찬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남자의 미끼를 폭로(?)했다.
미끼가 판을 치는 것은 효용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 만큼 살았으면 학습효과가 생길만도 한데 모양만 조금 바꾸면 또 속아 넘어간다. 사람들은 낚싯바늘의 지렁이를 문 물고기를 ‘3초짜리 기억력’이라고 놀려대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물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1일자 국민일보 22면 ‘오늘 본 옛 그림’에서 손철주 미술칼럼니스트가 인용한 소설가 김훈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보자.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아, 사는 게 낚이는 거로고.”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