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나이티드 박경훈 감독 “축구는 창조적 예술… 실수 두려워말라 독려”

입력 2010-12-21 17:38


‘바람처럼 빠르고 돌처럼 굳으며 여자처럼 아름다운 축구.’

박경훈(49)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이 지난해 제주를 맡은 후 팀의 특징으로 내세운 ‘3多 축구’다. 3多 축구를 내세운 제주는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 꼴찌에서 두 번째인 14위에서 올해는 정상에서 두 번째인 준우승을 차지하며 수직 상승했다.

처음으로 프로축구 사령탑에 오른 박 감독은 데뷔 첫해 당초 목표였던 6강 진입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을 거두며 변방 팀 제주를 K리그 중심에 위치시켰다. 이런 공로로 20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우승팀 감독의 전유물이었던 감독상이 올 시즌 그에게 주어졌다. 감독상이 우승팀 이 외 감독에게 주어진 경우는 2005년 창단 2년 만에 인천 유나이티드를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은 장외룡 감독 이후 두 번째다.

20일 감독상 발표 이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박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먼저 언급했다.

“사실 감독상은 우승한 감독이 타야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받는다면 코치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도영 수석코치를 비롯한 코치진들, 트레이너들이 뒤에서 엄청난 도움을 줬고 감독을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의 힘이 컸어요.”

올 시즌 제주는 15개 팀 중 가장 적은 3패만을 기록했지만 초창기 박 감독이 팀을 맡을 때만 해도 패배의식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지난해 44골을 허용하는 동안 22골밖에 넣지 못한 빈약한 공격력과 수비력으로 선수단은 위축돼있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오히려 선수들에게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독려했다. 또 질책 대신 항상 칭찬을 앞세웠다. 박 감독을 지난주 말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났다.

“축구에서 실점하는 경우의 70∼80%가 실수에 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만들어서 골을 넣는 경우는 얼마 안 됩니다. 이 경우 실수를 하면 본인이 제일 잘 알죠. 선수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보단 칭찬을 해 선수들의 잠재력과 동기부여를 시켜주는 게 훨씬 좋아요.”

시즌 중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냐는 질문에는 “한번도 엄하게 한 적이 없어요. 축구는 창조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위축되면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습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강조와 함께 선수단도 보강했다.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김은중을 중국에서 데려와 주장을 맡겼고, 수원 삼성에서 박현범과 배기종을 데려왔다.

“팀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일단 공격부터 골키퍼까지 축을 형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김은중-구자철-조용형-김호준의 축을 만들고 배기종과 박현범을 추가로 영입했죠.”

성적이 수직 상승했던 팀인 만큼 남다른 훈련량을 자랑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올 시즌 제주는 K리그 전체 구단 중 가장 훈련량이 적은 팀으로 유명했다. 1시간 20분 정도의 훈련만 했다. 그 중에서도 메인 훈련은 20분 정도였다. 대신 20분 동안 모든 것을 쏟아 붓게 만들었다. 훈련 시간이 짧았던 만큼 선수들은 이 20분에 엄청난 집중력을 나타냈다.

이러한 훈련의 영향으로 제주 선수들은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끈끈함을 시즌 내내 보여줬다. 올 시즌 K리그 최대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7월 24일 인천에서 열린 인천-제주전이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선제골을 넣고도 연속 2골을 허용하며 1-2로 몰리던 제주는 후반 38분 산토스가 만회골을 넣은 후 김은중이 후반 추가시간에 추가골을 넣으며 3대 2로 재역전해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였습니다. 우리팀이 강팀으로 발돋움한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어요.”

시즌 초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박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듯했다. “페널티킥 논란도 있었지만 전 그것보다 네코를 교체 투입해 분위기를 반전시킨 다음 구자철을 넣어 승부를 가져오려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네코를 넣어서 후반 분위기를 우리쪽으로 가져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구자철을 준비시키는 과정에서 아디에게 헤딩골을 허용하면서 흐름이 서울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준우승을 한 만큼 내년 목표는 우승이냐고 물었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올 시즌과 같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올해도 제가 준우승을 하고 싶다고 해서 준우승을 한 게 아닙니다. 성적은 매 순간 충실하게 우리 플레이를 하다 보면 따라 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 감독은 내년을 팀이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해로 내다보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도 진출해 경기를 치러야 하는 만큼 선수를 보강하고 비 주전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줘 선수 간 실력차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둘 계획이다. “3명 정도의 선수를 추가로 영입해 정규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 중점을 두고 팀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나머지 대회는 성장 과정에 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줘서 선수층을 두텁게 하는 동시에 기량 차도 줄여나갈 예정입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