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경영권 보장하고 소송 피하기… 채권단, 현대그룹 현대건설 인수 자격 박탈 배경

입력 2010-12-20 22:19


‘현대상선 경영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중재해주겠다. 그러니 현대건설은 포기해 달라.’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가 20일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는 대신 ‘당근’을 제의했다. 현대건설을 현대자동차 그룹에 넘기더라도 현대그룹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은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권단이 나설 명분이나 권한도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소송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 경영권 보장 중재”=현대그룹은 그동안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으로 넘어갈 경우 현대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왔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에 범현대가의 지분 32.29%를 합하면 현대그룹의 지분(우호지분 포함) 43.4%를 위협할 수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매각주간사인 외환은행 관계자는 “양 그룹 간 중재에 나서서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경영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현대차그룹에 ‘조건부 매각’을 하는 것은 아니고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할 경우 몇 가지 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현대건설이 소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그룹에 팔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경쟁기업에 직접 지분매도를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실현가능성이 크지 않다. 따라서 시장에 분산매각하거나 연기금 등에 매각하는 방안 등을 두고 양측의 입장을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중재안은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채권단에 요청했으며 격론 끝에 수용됐다.

◇안건 신속처리 배경은=당초 22일까지 최종결론을 내리겠다던 채권단은 예정보다 이틀 앞당긴 이날 오후 전격적으로 결의 내용을 발표했다. 연내에 현대차그룹과의 협상을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상태에서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채권단의 갈짓자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도 부담이 됐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건설을 채권단이 오래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도 있었고 비판 여론이 높아진 것도 원인 중 하나”라며 “매각 절차를 빨리 진행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연내에 주주협의회를 열어 현대차와의 협상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매각 절차 전반에 관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점이 변수다. 채권단이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진행하더라도 현대그룹이 소송을 내면 법원 판단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수합병(M&A)처럼 복잡한 사안의 경우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통상 수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건설 매각 자체가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 한석수 솔로몬투자증권 연구원은 “M&A과정에는 정답이 없다”면서 “법원에서 어떻게 뒤집어질지 모르는 만큼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현대그룹이 소송을 내 몇 년 간 법률적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면 현대건설의 기업가치는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채권단의 매각 수익 극대화 이외에 일정부분 국고에 되돌리는 절차의 정당성도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권단이 신뢰를 잃은 것은 주변의 간섭에 제대로 대처를 못했기 때문”이라며 “현대건설 인수는 정책의 영역이 아닌 상거래인 만큼 채권단이 심판관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하고 그 결과를 모두가 준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고세욱 백민정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