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2월 20일 오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이 주최해 청어람에서 열린 '목회자 性윤리, 어떻게 할 것인가?' 포럼에서 박성자 기독교여성상담소장 발제문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지난 10년간 아동 성폭력만 5000건이 늘었다. 올해 들어 많은 교회 내 성폭력 당한 여성들의 상담이 쇄도하고 있다. 교회 내 성폭력 문제는 아무리 얘기를 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있었던 일도 80% 이상의 성도는 안 믿는다. 5%는 희생자 여성과 함께 투쟁하다 교회를 떠나고, 나머지는 그냥 슬그머니 떠나고, 80%는 아예 안 믿는다.
2005년에 우리 연구소에 성폭력과 관련해 100건의 신고가 있었다. 성도간 신고보다는 주로 목회자 관련, 청년사역 담당자에 대한 신고가 많았다. 특히 청년담당 사역자의 경우 굉장히 머리를 많이 써서 범죄를 저지른다. 주로 새신자에게 접근하는데 집안이 장로나 집사 등 중직인 경우는 안 그런다. 흔히 목회자와 관련된 성폭력이 사이비 종파에서 많이 나온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큰 교단에서도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교단 비율은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려우나 대체로 특정 교단과 무관하게 일어난다. 장소는 주로 당회 의장실, 목사가 쉬는 침대가 있는 사무실이 사용됐다. 어느 교회에서는 침대를 치우고 CCTV를 갖춘 다음에 계속 시무하라는 조치를 내렸다고 들었다. 기도원이나 심방을 빙자해 집에서 당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호텔이나 여관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목회자의 성폭력은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거절할 수 없는 유형의 성추행을 저지르는 경우이다. 성직자의 일탈, 성적 타락으로 인한 비윤리적 행위, 야동 시청, 포르노그라피 시청에 빠진 사람들은 부부관계에서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또 여러가지 성적 타락 행위, 성매매의 경우도 있다. 상담 사례가 무척 다양하다. 2004년에 처음 지침서를 냈고, 2005년 증보판을 냈다. 대부분의 성폭력 중 한번의 일탈행위는 회복과 구제를 얘기하고 모색할 수도 있다. 이 정도는 로맨틱하고 지고지순한 경우다. 그러나 나머지는 상대 여성을 공격하기 위해 성경을 오용하는 등 뻔뻔하거나 마지못해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여성이 먼저 유혹했다고 책임 전가하고 스토커라느니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느니 책임을 전가한다. 자기는 거부하지 못했다고 그런다. 자신은 운이 나쁜 피해자일 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먹이 사냥형도 있다. 양의 탈을 쓰고 여러 명의 여성을 상대로 장기간 피해를 입히는 자다. 2008년 선교 집단 공동생활을 하는 10여명의 여성들을 전부 건드린 경우는 검사와 판사도 공소기간이 지났으나 악질로 판단해 실형을 선고했다. 이렇게 장기간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청년들을 지도한다면서 이중적인 관계를 갖는 목회자도 있다. 교육상담 빙자형이다. 종교체험 빙자형도 있다. 안수기도 해주고 성추행을 하는데 새벽기도회나 기도원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교회 내 성폭력의 특징은 절대적 위계관계에 있어 거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명백하게 성폭력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나 성서 오용 등을 통해 화간의 형태를 띄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고소를 해도 치하된다. ‘좋아서 같이 해 놓고 뭔 고소냐’ 이런 식으로 된다. 이건 교회 내 성폭력의 특이한 경우이다. 폭력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주의 종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경우 발생은 용이하지만 법적 해결은 어렵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강간의 경우 얼마나 저항하고 거부했는가 하는 증거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 그래서 해결이 안된다. 자신이 성폭력을 당한다는 생각도 못한다. 증거를 보전할 생각도 못하고 지속적으로 당한다. 인식을 했을 때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이후다. 피해 사실을 드러내면 교회로부터 완전 차단되고 교회를 파괴시키는 음모 세력으로 몰린다. 사역이나 선교에 장애가 된다고 오히려 공격당한다.
교회 내 성폭력은 딸과 아버지의 근친상간의 유형을 띈다. 피해자와 성도는 자주 접촉하고 친숙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교회를 떠나기 전에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이 관계가 이어지게 된다. 피해자가 근친상간을 당했을 때 느끼는 수치와 비슷한 혼란, 그리고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버린다. ‘주의 종’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상담도 하려다가 가버린다. S교회 여성도 우리한테 왔었다. 외국에 있는 친구를 통해 왔다. 그녀는 교회에서 쫓겨나고 모든 사람에게 비난을 받았다. 성폭력이 밝혀진 다음에 목회자는 꼭 합리화하기 위해 말씀을 인용한다. 심지어 교회 당회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 주의 종은 하나님만이 벌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다윗과 밧세바의 경우를 인용하기도 한다.
해결책은 다른 사람이 고소할 수 있게 한다든가, 가정폭력 특별법으로 다룬다든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 적용 등의 법을 적용할 수 있다. 화간 사건이 아닌 힘의 불균형에 의한 특별한 관계로 다루어야 한다. 성폭행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목회자 개인은 배우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여성을 욕구 해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남성 우월주의를 버리고 지나친 금기시도 주의해야 한다. 어떤 순결 서약을 한 전도사의 경우 과거가 있는 여자를 용서를 못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가 되레 위험하다. 성적 남용에 대해 한국 남자들은 매우 관용적이다. 요즘 교단에서는 심의위원회를 만들어서 피해 여성의 얘길 듣고 있는데 요즘 아가씨들은 녹음을 해서 다 돌고 있다. 심의위원이 “네가 좋아서 한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공격한다. 이 정도면 심의위원 목회자가 다 도덕적으로 해이하거나 정신상태가 수상한 것이다. 자신의 성에 대한 가치관을 성찰해봐야 한다. 성도착증을 먼저 치유한 다음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상담사를 만나든가 다른 방법으로 치유를 해야 한다. 목회자가 자기 문제를 상담할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 부부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믿을 만한 목회 상담자가 없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치욕감을 갖지 않고 의논할 대상이 필요하다. 자기주장을 분명히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교회는 교회 내에서 행해지는 모든 성폭력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이 일을 했는데 전혀 변화와 발전이 없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피해 여성들이 ‘가만 있어서는 안된다’며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한 신학대에서는 여신학생 4명이 성추행을 당했다. 그 신학생들이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창피해 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교단에서도 정책적으로 바꿔줘야 한다. 사회에서는 처벌이 갈수록 엄해지고 있는데 비해 교회에서는 웃어넘긴다. “무서워서 바람이나 피우겠어?” 이런 반응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성폭력없고, 성차별없는 한국교회 풍토를 만들어가야 되겠다.
박성자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